지난 2018년 6월 2일 동국대 신공학관 대강당에서 “민족통일 과제와 단군”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단군학회 2018 (단기4351) 봄철 학술회의”에서 [조소앙의 단군민족주의와 삼균론]을 발표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영훈 교수의 발표 논문을8회에 걸쳐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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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균사상과 단군민족주의 - 단군민족주의적 정치이론으로의 삼균주의
조소앙의 삼균사상은 균권ㆍ균부ㆍ균학론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의 삼균론은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세차원에서도 균등이 실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전자는 협의의 삼균론으로, 후자는 광의의 삼균론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협의의 삼균론이 국가적 차원의 정의와 통합을 위한 처방이라면, 인여인ㆍ국여국ㆍ족여족 차원에서의 광의의 삼균론은 국제적 차원이나 인류사회 차원의 통합과 정의를 위한 처방이라 하겠다.
소앙의 삼균주의론은 두 차원의 삼균론에 기초하여 각 방면에서 나름대로의 상황판단 밑에 치밀한 정책대안을 전개한다. 가령 정치균등론은 국민의 기본권리를 균등히 하고 보통선거제와 국민개병론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을 추구하며, 경제균등론은 토지국유와 대생산기관의 국유정책에 기초하여 국민적 복지를 제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교육균등론에서는 국비부담에 의한 의무교육 실시와 교육기관의 양적 확충 등과 같은 정책대안들이 제시된다.
광의의 삼균론과 관련해서도, 민족 간의 균등을 위해서는 민족자결권에 기초하여 각 민족이 국토와 주권을 광복하고 국토와 주권을 보위하며 고유의 역사와 문화 및 민족의식을 발양하고, 평등호혜적 민족의 연합을 이룩해야 한다는 원칙이 제안된다. 그리고 국가 간 균등을 위해서는 국가 간에 국제적 침략을 반대하고, 국제도덕을 존중하며, 연합국기구를 옹호해야 한다는 등의 실현방안을 제시한다.
소앙의 삼균주의는 항일운동기 중국지역의 통일전선운동과정에서 그 중심이론으로 폭넓게 수용되었다. 가령 1935년 좌우익 연합정당으로 성립한 민족혁명당과 한국국민당(1935) 및 한국독립당(1940)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1941년 임정이 [건국강령]을 제정하여 발표할 때도 그 기조이념으로 채택되었었다. 물론 해방 후 소앙이 사회당을 창당(1948)할 때도 삼균주의가 그 기조이론이었었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좌우를 종합하는 제3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또는 한국에서 출현한 유일한 독창적인 사회주의사상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소앙이 주도한 정치적 노선과 기획들은 한국사 속에 존재했던 단군민족주의적 사상.의식 흐름 속에 암묵적으로 공유되어 있는 정치적 지향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준 것이라 생각된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및 안호상의 일민주의와 함께 단군민족주의적 정치이론 또는 ‘대종교적’ 정치이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삼균주의와 신민족주의는 민족적 자주독립과 통일 및 통일민족국가 건설이라는 실천과제에 부응하여 대종교교리와 단군민족주의의 정치적 지향들을 구체화시킨 정치이론들이었다.
일찍이 한승조교수는 “소앙사상은 단군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전통사상의 근간에다 20세기 초반 세계의 정치ㆍ경제ㆍ사회사조를 접목시키며 항일운동의 실천과정에서 집대성한 것”이라 설파한 바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와 학자를 망라해 보아도 조소앙만큼 민족종교와 사상을 이해하고 그 뿌리위에 정치사상을 구성한 사람은 드물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는데, 여기서 한교수가 말하는 ‘단군신앙’과의 관련성은 곧 단군민족주의와의 관련성이라 바꾸어도 될 것이다.
한교수는 소앙의 삼균주의가 단군신앙의 영향 하에 성립한 것이라는 증거를, 앞에서 제시한 여러 측면 이외에, (1) 소앙사상이 동서의 전통종교는 물론 현대정치사상들까지도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은 단군사상의 포용력과 종합성을 뿌리로 했기 때문이라는 점과, (2) 소앙의 세계일가사상은 단군사상의 홍익인간 정신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점, (3) 소앙이 더러 그리는 도표는 「삼일신고」에 나오는 그것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 등을 더 들고 있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단군민족주의적 정치이론이었던 것이다. 소앙의 삼균주의는 단군민족주의의 한 양상이자 산물이었다 할 수 있다.
단군민족주의는 단군의 건국을 자기집단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간주하면서, 그 동질성과 공동운명성을 ‘단군의 자손’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적극적으로 진술한다. 그런데 이 단군의 자손론(=단군민족주의)에는 단순히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나 규정을 넘어서는 정치ㆍ사회적 지향들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집단적으로 추구해가야 할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이나 세계질서 및 정의에 대한 일정한 지향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민족주의에 내포-동반된 정치ㆍ사회적 지향은 일단, (1) 민족 구성원들을 신분적 차별이 없는 평등한 관계로 보는 생각과, (2) 국가의 주인은 민족이며, 민족을 위한 기관이어야 한다는 생각, (3) 민족을 우선적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민족적 차원에서 공동운명체가 가능하다고 보는 생각, (4) 세계를 민족들이 경쟁하는 장으로 보면서 민족적 자주성을 강조하는 관점, (5) 동포애와 민족정기 같은 윤리적 기제를 중시하는 점 등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말 이후 단군민족주의자들이 걸어간 정치노선들에는 위와 같은 지향들을 공유되어 있었다. 위의 (1)은 신분차별을 거부하면서 구성원들을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통합하려는 초계급적(전민족적) 국가론으로 나아갔고, (2)는 전제군주제나 독재를 거부하는 국민주권주의-민주주의로 나아갔다.
(3)은 계급적 대립을 거부하고 동포애와 타협-양보-협동의 덕을 강조하는 합작통일론으로 나아가고, (4)는 식민지배와 진영에의 종속을 거부하는 민족자주운동으로 나아갔다. (5)는 사적 이익에 몰두하는 이기주의를 거부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진보적 정치이론과 결합하였다. 이런 지향들은 민족ㆍ자주ㆍ통일ㆍ민주ㆍ복지ㆍ공동체ㆍ정의 같은 명제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며, 단군민족주의는 이같은 방향으로 한국사를 견인한 동력의 하나로 기여했다 하겠다.
단군민족주의자 조소앙 역시 이상과 같은 단군민족주의의 정치적 지향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삼균주의를 비롯한 그의 정치사상과 정책제안들은 단군민족주의가 기초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지향들을, 좌우익 연합-합작을 통한 통일민족국가로 나아가야 하는 당위적 요구에 맞추어 진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균권ㆍ균부ㆍ균학론은 단군민족주의의 공동운명체론의 정치ㆍ경제ㆍ문화적 표현이었다.
그가 천명한 ‘韓人의 韓’으로의 정치사상과 민주국가론은 민족의 국가를 지향하는 단군민족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그의 족여족균등론과 국여국균등론은 민족단위의 자결을 이상시하면서 한민족의 자주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소앙에게 있어 단군민족주의는 민족적 정체성과 정기를 확보하여 자주독립을 성취-유지하고 그 국가공동체를 건강하게 통합하기 위한 필수적이면서 당연한 사상적 토대였다. 그는 홍익인간이라는 고유적 이념을 발굴하여 그를 균등의 지침으로 해석하고 통일공동체를 조직-운영하는 원리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그의 삼균주의는 균권ㆍ균부ㆍ균학론 같은 국가조직원리에서 더 나아가 보편적 인간의 존엄성과 민족적 자결에 기초한 세계일가를 추구하는 인여인균등ㆍ족여족균등ㆍ국여국균등론으로까지 진전된다.
홍익인간사상과 신지비사의 균등사상을 국내적 통합과 정의를 위한 처방에 그치지 않고, 지구적 평화와 통합을 위한 원리로 확대시킨 것이다. 소앙의 단군민족주의는 단군민족주의의 정치ㆍ사회적 지향을 인류사회의 구성-운영원리로까지 확대하여 민족평등ㆍ국가평등의 세계일가사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소앙이 제기하는 삼균주의 정치이론은 기본적으로 수학시절부터 습득한 동서양의 지식과 특히 사회주의 운동의 동향으로부터 자극받았을 것이다. 거기에 소앙의 지적 상상력과 실천적 지식인으로의 통찰력이 작용하여 체계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근대 사상조류로부터의 영향만 추정해서는 안 된다. 소앙의 사상에 영향 준 사조에는 단군민족주의와 대종교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소앙은 기왕의 대종교나 단군민족주의의 정치적 지향들을 사상ㆍ이론 면에서 한 단계 더 고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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