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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석 박사의 『재미있는 한자이야기』 - 不恥下問불치하문

어떤 직장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부하들이 상사에게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잘 모르겠는데, 좀 가르쳐주지.’가 1위였다고 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질문하는 자세만 있으면 환영받을 수 있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이제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는 시대는 지나갔나 보다.

오늘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해야 한다고 말한 공자의 얘기를 할까 한다. 바로 ‘불치하문’이다.

금주의 한자 不恥下問불치하문에서, ‘不불’은 ‘아니다’는 뜻의 부정부사이다.

‘恥치’는 ‘부끄러워하다’는 뜻이다. 흔히 ‘치욕恥辱스럽다’ 혹은 ‘수치羞恥스럽다’ 라고 할 때 이 ‘恥치’자를 사용한다.

‘下하’는 ‘아래’라는 뜻인데, 본문에서는 ‘아랫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학문이 부족한 사람을 말한다.

‘問문’은 ‘묻다’는 뜻으로 ‘의문疑問’, ‘질문質問’이나 ‘문답問答’이라는 표현에 쓰인다.

즉 ‘불치하문’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능력이나 학식이 자신만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수 있으므로,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겸허한 자세로 배움을 좋아한다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이 말은 《논어論語》〈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온다.

《논어》는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과 함께 유가儒家의 기본 경전인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공자의 언행과 사상을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 물론 공자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나 혹은 제자의 제자 손에 의해 기록 정리된 것인데, 총 20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편의 제목은 해당 편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두 세 글자를 취해서 붙였다. 예를 들면 제1편 ‘학이學而’는 이 편의 첫 번째 구절인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에서 따온 것이다. 해석하면, “배우고 제때에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 하겠다. 책명 ‘논어論語’의 뜻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지만, ‘말할 논論’자는 ‘논찬論纂’ 즉 ‘논의해서 편찬하다’는 뜻이고, ‘말씀 어語’자는 ‘공자의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공자의 말을 논의해서 편찬하다’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중국 춘추시대에 활동했던 공자孔子(서기전551-서기전479)는 위대한 사상가요 정치가이며 교육자로서 유가학파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서 노魯 나라 출신이다.

그는 당시에 무너진 정치질서를 회복하고 자신의 정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돌아다녔다. 이 말은 철환천하轍環天下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수레 철轍’자와 ‘돌 환環’자로 구성된 이 ‘철환’은 ‘수레를 타고 돌아다니다‘라는 뜻이고 ’천하天下‘는 당시의 중국 전체를 말한다.

공자가 한 나라에 도착하면 앉은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이 없이 급히 다른 나라로 떠났다고 해서 ‘공석불가난孔席不暇暖’이란 말도 생겼다. ‘겨를 가暇’자에 ‘따뜻할 난暖’자. 당唐 나라 때의 대문장가 한유韓愈(768-824)가 〈쟁신론爭臣論〉이란 글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줄여서 ‘공석孔席’ 혹은 ‘겨를 가暇’자를 빼고 ‘공석불난孔席不暖’이라고도 쓴다.

훗날 공자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에 힘을 쏟았다.

사람들은 모두 공자를 일러 성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공자는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학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공자가 성인이라고 일컫는 노魯 나라 주공周公의 사당인 태묘太廟에 가서 제례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모르는 것을 질문했는데 거의 모든 일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이 등 뒤에서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누가 이 사람보고 예를 안다고 했어? 아무 것도 모르고 무엇이든지 물으려고 하려고만 하잖아!”

공자는 뒤에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 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묻는 것, 이것이 바로 예이다.”

그 시절 공어孔圉(서기전6세기-서기전480)라고 하는 위衛 나라의 대부가 있었는데, 그는 겸허하게 학문을 좋아했으며 사람됨이 정직했다. 당시 사회 습관으로 최고 통치자 혹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죽은 뒤에는 그에게 별도로 호칭을 달아줬는데 이것을 시호諡號라고 한다. 이 습관에 따라 공어가 죽은 뒤에 그에게 ‘문文’이라는 시호를 수여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孔文子라고 부르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자공子貢(서기전520-서기전456)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공자의 제자는 3천 명에 달했고 그 중에 주周 나라 때의 교육 과목인 육예六藝에 통달한 사람이 72명이었다고 한다. 육예는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말하는데 예는 예의, 악은 음악, 사는 활쏘기, 어는 말몰기, 서는 글쓰기, 수는 산수를 가리킨다.

또 공자 문하의 뛰어난 제자 10명을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자공은 외교사령 즉 외교적인 언사에 뛰어난 제자로 일컬어졌다.

자공의 성은 단목端木이라는 복성複姓이고 이름은 사賜로서 춘추시대 위衛 나라 사람이다. 《논어》에서 공자와 제자의 문답 중 그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영리하고 이해력이 뛰어나 공자로부터 ‘지난 것을 말해주면 올 것을 안다’, ‘그의 현명함이 나보다 낫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상술에도 뛰어나 큰 부를 축적하였다고 전해진다.

자공은 공어에게 부족한 곳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스승 공자에게 가서 여쭈었다.

“스승님, 공문자는 무엇 때문에 ‘문文’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요?”

공자가 대답했다.

“민첩한데다 배움을 좋아하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그를 일러 ‘문’이라고 한 것이다.

즉 공어가 총명하면서도 또 배우는데 부지런하며, 지위가 자신보다 낮거나 학문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으로써 그의 시호를 삼았다는 것이다. 시호를 정하는 법인 시법諡法에 의하면, ‘근학하문勤學下問’ 즉 부지런히 배우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문文’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공문자의 시호가 정해진 이유를 설명한 것이지만 사실 공자 자신의 학문관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의미의 ‘三人行삼인행에 必有我師焉필유아사언’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말은 어떤 사람에게든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다.

공자의 불치하문하는 태도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이른바 ‘공자천주孔子穿珠’이다. ‘뚫을 천穿’자, ‘구슬 주珠’를 쓰는 이 말은 글자 그대로 하면 ‘공자가 구슬을 꿰다’인데, 공자가 시골 아낙에게 물어 구슬을 꿰었다는 뜻이다. 고사는 이러하다. 공자가 구슬을 선물 받았는데, 그 구슬은 희한하게도 구멍이 아홉 번 굽어졌다. 공자가 이리저리 궁리해서 열심히 구슬에 실을 꿰어보았으나 너무 어려워서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어느 날 공자가 진陳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뽕을 따는 아낙네들을 만나자 그 구슬 생각이 났다. 이 아낙네들이 혹시 구슬에 실을 꿰는 방법을 알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공자가 질문을 하자, 한 아낙네가 대답했다.

“차근차근히 생각하고, 생각을 차근차근하게 하세요.”

공자가 아낙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는데, 발밑에 기어 다니는 개미들을 보고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개미허리에 실을 묶고 구슬의 한 쪽 구멍으로 들어가게 하고, 반대쪽 구멍에는 꿀을 발라 놓는 것이었다. 그러자 개미는 꿀 냄새를 맡고 계속 구멍으로 들어가 이윽고 구슬의 다른 구멍으로 나왔다.

중국 송나라 때 편찬된 《조정사원祖庭事苑》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공자는 학식이 없는 아녀자에게 거리낌 없이 모르는 것을 물어 알았던 것이다.

‘耕當問奴경당문노, 織當問婢직당문비’라는 말이 있다. ‘밭갈이는 마땅히 사내종에게 묻고, 길쌈은 마땅히 계집종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학식이 아무리 뛰어나고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세상일을 다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것이 닥치면 학식 불문, 나이 불문, 지위 불문, 시간과 장소 불문하고 묻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공자의 또 다른 명언이 떠오른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되게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 是知也시지야)”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농경사회였다. 경험과 연공서열이 금과옥조처럼 귀히 여겨지던 시대에 굳이 ‘불치하문’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었을 듯 보인다. 오히려 이 사자성어는 지식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한다.

“어이, 김대리, 엑셀에서 데이터를 정렬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어멈아, 휴대폰 문자에 이모티콘은 어떻게 넣는 거지?”

권위주의적인 사회를 더욱 부드럽게 하고, 고부간의 갈등을 더욱 완화시키는 비결, 바로 ‘불치하문’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단어】
不불: 아니다. 부정부사. /一(한일)부, 총4획, bù/
恥치: 부끄러워하다. /心(마음심)부, 총10획, chǐ/
下하: 아래. 아랫사람. /一(한일)부, 총3획, xià/
問문: 묻다. /口(입구)부, 총11획, wèn/

【출전】
子貢問曰: “孔文子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논어論語》〈공야장公冶長〉

- 이재석 박사 약력 -

⦁건국대 중문학과 졸업
⦁성균관대 대학원 수료(문학박사)
⦁중국 北京大學, 山東大學에서 연구활동
⦁주요논문 : 〈《孟子》에 나타난 通假字 연구〉, 〈《四書章句集注》 音注의 訓詁〉, 〈《論語集解》 訓詁 중의 聲訓〉 외
⦁주요 번역서 : 《중국문화개론》,《가결》, 《중국 역대황제》, 《중국소학사》, 《갑골학통론》 외
⦁주요 논저: 《인류원한의 뿌리 丹朱》, 《광무제와 이십팔장》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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