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정영훈 교수의 『조소앙의 단군민족주의와 삼균사상』 여덟 번째 이야기

삼일운동 후 단군민족주의의 여망을 반영한 이론

 

 

이상에서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단군민족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논의하였다. 논문에서는 먼저 조소앙이 한민족의 역사가 단군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단군민족주의적 역사인식-민족의식을 갖고 있었고, 단군을 신앙대상으로까지 높였던 대종교인들과 교유하면서 자신의 지적 세계를 발전시켜갔다는 점 등을 들어 그를 단군민족주의자로 규정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고유의 역사․문화가 보전돼야만 민족적 생존발전이 가능하다는 국수보전론적 사고에 기초하여, 삼균주의의 사상적 기원을 단군시대의 문건으로 전해져온 [신지비사]나 단군신화 속에 언급된 홍익인간이념 등과 같은 고유의 관념들 속에서 찾은 점과, 그의 삼균론이 대종교의 삼일철학에서 보이는 3분법적 사고와 유사하고, 특히 균권ㆍ균지ㆍ균부론이 대종교가 전개하는 조화ㆍ교화ㆍ치화의 삼신론과 통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삼균주의가 대종교류의 단군민족주의로부터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임을 추정하였다.

그리고 그 같은 논의에 기초하여 삼균주의를 단군민족주의적 정치사상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 지적하였다.

삼균주의는 물론 균권-균부-균지의 3균론 외에 인여인ㆍ족여족ㆍ국여국의 또 다른 차원의 균등론도 제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침에 기초하여 구체적인 정책적 원칙과 대안들까지 포함한 풍성한 정치이론으로 전개되어 간다. 

소앙이 제기하는 삼균주의는 기본적으로, 수학시절부터 습득된 폭넓은 교양과 지적 상상력, 그리고 실천적 지식인으로의 진정성이 동반된 통찰의 산물이다. 거기에 그가 교유한 단군민족주의자와 그 사상들로부터도 적지 않게 영향 받았다 할 수 있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좌우를 종합하는 제3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이자, 한국에서 출현한 유일한 독창적인 사회주의사상으로까지 평가되고 있지만, 그 지적 뿌리의 주요부분은 한국사속에 존재해온 단군민족주의에 두고 있었다.

삼균주의론은 계급적-사상적 분열을 통합하여 민족연합전선을 성사시키고 나아가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했던 후기 한국민족주의의 사상적 과제에 즉응하여 단군민족주의적 민족의식을 정치사상적으로 구체화시킨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삼균주의가 제시하는 민족국가상은 근대기 단군민족주의가 산출해낸 이상국가 모형의 하나였으며, 그 구성원리로 중시했던 균등의 원리는 단군사화에 나오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이념과 신지비사가 전하는 고유의 균등론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삼균주의는 단군민족주의가 초계급적 국가론 또는 全民的 국가론으로 전개돼간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안재홍이 제기한 신민족주의론이다.

안재홍은 신간회에 참여하였던 민족지도자로 해방 후에는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하고 미군정의 지지를 얻어 민정장관을 역임하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는 대종교에 입교한 전형적인 단군민족주의자였다. 

안재홍은 신간회운동에 참여할 무렵부터 좌우합작과 통일민족국가를 성사시킬 수 있는 기본이론을 창출하는데 관심이 있었는데, 특히 민족고유의 정치철학을 발굴하여 그를 새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체계화하고자 하였다. 그는 고유철학에 대한 궁구를 거쳐 다사리이론을 중심한 고유의 정치사상을 찾아내고, 그에 토대하여 신민족주의라는 이름의 독창적인 정치이론을 제안하게 된다. 

이 신민족주의이론은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함께 한국정치사상사가 생산해낸 대표적인 독창적 정치이론으로 꼽을 수 있는데, 내용적으로 보아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사회주의의 평등(연대)을 함께 조화시킨 제3의 초계급적-전민적 체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균주의와 공통적이다.
  
안재홍의 신민족주의론과 조소앙의 삼균주의론은 모두 단군민족주의적 정치이론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이론들이다. 민족적 공동운명성과 자결권을 강조하는 단군민족주의의 기본지향을 정치사상적으로 구체화시킨 이론이라 평가할 수 있으며, 좌우합작과 통일을 촉구한 삼일운동 후 단군민족주의의 여망을 반영한 이론이기도 하였다. 

이 두 이론은 통일전선-민족연합전선 운동을 대표하는 정치이론이거니와,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모두 한국전쟁과정에 납북되어 유폐됨으로써 이후의 한국정치사 및 사상사와 단절되는 비극을 맞는다.  두 사람의 납북은 개인적인 불행이기도 하지만, 단군민족주의와 중도적 민족주의이론 및 민족통일운동의 불행이기도 하였다.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