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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환단고기 ‘열풍’

 환단고기는 1911년 독립운동가 계연수가 우리고대사서 5권을 하나로 묶어 편저한 역사서다. 신라고승 안함로와 고려의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 상하”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 이암이 지은 “단군세기” 그리고 고려말 충신 범장이 쓴 “북부여기”와 조선시대 찬수관을 지낸 이맥이 지은 “태백일사”를 합본한 것으로 1400년에 걸친 우리 고대사다.

 최근 재야사학자 안경전씨는 지난 30년 동안 중국, 유럽, 중남미 등 우리고대사의 역사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각종 자료와 문헌고증을 통해 한민족 상고사인 환단고기 완역본을 2013년 1월에 발행했다.

 우리 고대사는 BC 7200년경 환국(桓國)으로 시작했다. 동서 문명의 시원국가인 환국은 인류의 첫 나라이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만주를 잇는 방대한 영토였다. 모두 아홉 부족(九桓)으로 12나라를 이루었다. 국명인 환(桓)은 온전한 하나 또는 환하게 빛나는 나라란 뜻이다.

 초대 통치자는 안파견(安巴堅) 환인천제였고 3천년을 존속했으며 서양역사의 원류로 알려진 수메르도 동이족의 한 부족이었다.

 1980년대 만주 요령성 조양시 부근에서 발굴된 홍산문화의 주역은 바로 환국의 다음나라인 배달(倍達)국이었다. BC 4700년에서 2700년에 있었던 나라로 엄청난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었다.

 전설 속의 인물로 알려졌던 군신(軍神)인 치우천황은 배달국의 14대 ‘자오지’천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역사적 실존인물로 다가왔다.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은 여신상, 적석총, 옥으로 만든 장신구, 원형과 방형의 제단 등 전형적인 동이족의 유물이었다.
  
 배달(倍達)국에 이어 고조선이 47대 2096년을 존속했으며 고조선과 고구려를 잇는 북부여가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밝히고 있다.

 안경전씨는 전국을 순회하며 환단고기‘북 콘서트’를 개최하여 고대사의 부활을 주장함으로써 신선한 충격과 함께 환단고기 ‘열풍’이 불고 있다.
 
 그는 특히 우리 고대사의 역사날조사건을 조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먼저 한국역사의 시작을 약 3100년 전 기자조선으로 보는 중국의 날조다. 이 사단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불거졌다.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왕에 봉한다(封箕子於朝鮮)는 기록이 있지만 최근 기자가 기국(箕國)이란 변방 소국의 왕인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 나와 허구임이 밝혀졌다. 윤내현 교수도 이 기국은 상(商)나라 말기에 세워진 제후국으로 변방의 소국이며 번조선의 국경까지 쫓겨 왔다가 멸망한 나라라고 말했다.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의 중화주의사관은 기자를 한없는 은혜자로 사대주의적 예찬을 했다. 태종과 역대임금들도 서운관에 보관된 조선 상고사를 공자의 가르침에 어긋난다하여 금서 조치했다. 퇴계와 율곡도 기자동래설을 믿고 한민족 고유상고사를 부정했을 정도다.

 중국이 기자조선을 조선의 첫 역사라고 주장한 것처럼 일본은 위만조선을 조선의 첫 역사라고 주장한다. 위만이 고조선의 준왕을 쫓아내고 주인이 되어 단군왕검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가장 치욕적인 일본의 우리역사왜곡 중의 하나다. 교과서에도 그대로 기재되어 있다.

 고조선의 왕이 된 위만을 조선인의 영웅처럼 과장한 것은 일본인들의 수작이다. 위만이 차지한 것은 고조선 전체가 아니라 고조선 서쪽 땅에 있는 번조선이다, 따라서 위만조선이 아니라 위만정권일 뿐이다.

 또한 한무제가 위만의 손자인 우거를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사마천이 사기에 기록했다. 그러나 사군의 이름이나 위치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북부여기에는 한무제가 우거를 멸하고 북부여로 쳐들어왔다. 이에 고두막한이 구국의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를 격파했다고 기록했다. 한사군설치는 이런 상반된 기록으로 볼 때 한무제의 계획이었을 뿐 실현된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주장도 허구이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낙랑군은 사서 ‘사기색은’ 하본기에 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기록해 당시 번조선의 위치와 같다. 그러므로 설혹 낙랑군이 설치되었다 해도 중국의 요령성과 하북성 일대이다.

 그런데도 이마니시 류는 낙랑군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로 평안도에서 발굴했다는 점제현 신사비를 들었다. 그러나 최근 이 비석이 시멘트 기초위에 세워진 것으로 위조임이 밝혀졌다.

 일본은 한민족 역사가 중국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폄하하고 동북공정을 추진하던 중국은 일본이 조작한 한사군이론을 근거로 본래 한강이북은 중국영토라고 조작하여 선전하고 있다.

 일제가 조작한 한사군을 열심히 외웠던 대한민국 중장년층은 기가 막힐 노릇이고 아직도 교과서에는 한사군이 살아 있으니 더욱 가관이다.
 
 일본은 일본서기를 지어 1300년 역사를 2600년으로 늘렸다. 그러면서 조선은 기원 전 2세기 86년 동안 존속한 위만조선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조선역사는 2200년으로 쭈그러진 나라가 되고 만다.

 사실이 이런데도 이병도를 위시한 강단학파는 식민사학의 잔재를 떨쳐내지 못하고 일제가 조작한 역사기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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