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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칠십 여섯 번째'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소통 열음, 인성 열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같음과 다름 사이 ‘둥근 나란히’ ‘병-질’(竝-)

나의 ‘나이기’는 - 나의 ‘나만이기’와는 달리 - 너의 너이기를 밀어 내거나 눌러 내리지 않는다. 나의 ‘너이기’도 - 나의 ‘너만이기’와는 달리 - 나의 나이기를 밀어 내거나 눌러 내리지 않는다.

나는 나도 너도 부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는 나도 너도 긍정한다는 의미다. 이때 나와 너가 너와 나 서로를 인정하는 ‘좋은 따로 함께’가 가능해진다. 너와 나의 대등한 함께에서 ‘나너이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너이기’의 대등한 함께는 ‘수평 다름’과 ‘수평 같음’을 기초로 한다. 수평 다름은 ‘수평 속 다름’으로 ‘수평적 다름’이요, 수평 같음은 ‘수평 속 같음’으로 ‘수평적 같음’이다.

이는 ‘너일 수 있는 나’, ‘나일 수 있는 너’로 ‘다를 수 있는 같음’, ‘같을 수 있는 다름’ 혹은 ‘다른 같음’, ‘같은 다름’의 표현이다. ‘수평 다름’과 ‘수평 같음’ 사이의 거리도 없다고 할 것이다.

‘나쁜 따로 함께’에는 ‘나와 억지로 같게 만드는’ 강제(强制)도 들어 있고, ‘다름을 다르게 대하는’ 배제(排除)도 들어 있다. 남을 자신과 같게(2) 만드는 강제든, 다름을 자신과 다르게(2) 대하는 배제든, 이들은 모두 획일주의, ‘같음주의’로 이어진다. 획일주의, ‘같음주의’는 수직주의의 산물이다. 강제로든 자율로든,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여기서의 자율은 이데올로기화되고 길든 자율이다. 함께하기는 일정한 방식의 하나 되기를 전제한다. 함께의 고어는 ‘-’인데 그 뜻에 ‘하나’가 들어있다 했다. 그런데 획일주의적, 수직주의적 함께는 ‘안 좋은 하나 되기’의 방법이다. 

만약 위아래의 나뉨이, 각자의 사람크기나 서로의 함께 크기를 작게 하지 않는 나뉨이라면, 이는 위아래 사이의 ‘수직 나뉨’이라기보다 옆과 옆 사이의 ‘수평 나뉨’이라 할 것이다. 이름(名)은 ‘위아래 수직’이지만, 실제(實)는 ‘나란히 수평’이라는 것이다.

‘竝’(병)은 땅 위에 두 사람들이 가로로 나란히 병렬(竝列)로 서있는 모습(立+立)을 나타낸 글자라 했다. 병(竝)은 ‘다’와 ‘수평’을 가리킨다. 다는 ‘다름’을 더 배려함이고, 수평은 ‘약함’을 더 배려함이리라. 다름과 약함도 함께일 수 있고 사람일 수 있음이 중요하다 했다.

‘병렬’(竝列)은 같음 혹은 강함인 나가 다름 혹은 약함인 너와 수평적으로 ‘같이 함께’이려 함이다. 이에 비해 ‘종렬’(縱列)은 세로로 나란히 늘어서는 함께의 모습이다. ‘모두가 앞’일 수 있는 ‘가로 나란히’와 ‘하나만이 앞’일 수 있는 ‘세로 나란히’의 차이는 일종의 수평과 수직 혹은 민주와 비민주의 차이라 할 것이다. 위아래와 앞뒤는 서로 통한다.

‘가로 나란히’의 ‘병질’ 질서를 방법이나 목적으로 하여, 아래로 강제하는 ‘갑질’이나 위로 복종하는 ‘을질’의 세로 나란히의 수직질서를 넘어서는 일이 필요하다.

나이나 다양한 사회적 자리들의 높이 등 외적 크기가 어떤 것의 참과 거짓, 좋음과 나쁨, 옳음과 그름을 결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일상에서 관습적으로 말하는 다양한 자리들의 위아래 자체가 일방적인 수직적 나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수평적인 ‘가로 나란히’의 함께에서 서로가 서로를 ‘다 사람’ 혹은 ‘다 입’으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수평 예’의 만남과 소통이 가능하고, 이는 다시 서로의 사람크기, 삶의 크기를 키우는 기초가 될 것이다.

엄밀히 말해, 좌우로 나누어 다시 수직화 될 여지가 있는 ‘가로 나란히’보다 이를 넘어서는 ‘둥근 나란히(원형 나란히)’가 진일보한 수평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둥근 원탁의 자리들은 상하나 전후, 좌우가 없기 때문에, 그들 위의 어떤 임의의 사람도 ‘다 입’ 가운데의 한 입으로 평등하게 만날 수 있고 만나질 수 있는 완벽한 수평적 배치질서이다.

질서 정연한 원탁에서조차 ‘눈 밝은’ 수직주의적 질서나 규율이 슬그머니 같이 할 수도 있음은 조금 다른 문제다. 아래에서 광의의 ‘가로 나란히’는 ‘둥근 나란히’를 포함하는 의미로도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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