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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그는 합리적이고 자주적인 사람이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4회 ‘대담신라(對談新羅)’ 행사 개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오는 11월 8일 경주에서 제4회 ‘대담신라(對談新羅)’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대담신라(對談新羅)’ 행사는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문가와 함께 일반 시민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참여하여 신라의 역사와 고고학에 관해 토론하며 이야기 나누는 행사로, 그동안 신라의 개, 점술(占術), 자연재해 등의 주제를 가지고 모두 3차례(4.12./6.7./9.6.)에 걸쳐 진행되었다.

역사학과 고고학적인 전문 지식을 일반인과 공유하는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 참여자들로부터 호평과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에 열리는 마지막 이야기(11.8.) 주제는 ‘신라 장군, 김유신’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듯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통일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신라의 장수가 바로 김유신이다. 그는 신라에 의해 532년(법흥왕 19)에 멸망한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이다.

이번 대담은 김유신에 대한 두 가지 소주제로 구성된다. 첫 번째로는 문헌 기록을 중심으로 한 ▲ ‘우리가 몰랐던, 김유신’이다. 김유신에 대해 김부식(金富軾, 1075∼1151)과 신채호(申采浩, 1880~1936)의 평가를 살펴보고, 그 가운데 신채호가 ‘음흉한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평가한 시각에 주목해본다.

실제로 김유신의 가문이나 살아온 삶을 추적해 보면 유학(儒學)에 대한 깊은 소양을 가진 합리적이고 자주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면서, 당(唐)나라나 왜(倭)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7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유명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덧붙여 그가 말년에 중풍(中風)을 앓았으며, 전쟁에서 패하고 살아서 돌아온 아들 문제로 고심했던 사례를 통해 인간적인 면모도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김유신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인 ▲ ‘말의 목을 베고 결의를 다진 사건’을 바탕으로 신라 시대의 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기마인물형 토우, 말갑옷, 월성 해자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다수의 말뼈 등에서 신라인들의 말에 관한 관심을 알 수 있다. 신라인이 아끼고 사랑했던 말에 대해 전문가들과 토론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참가 신청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누리집을 통해 10월 25일 오전 10시부터 선착순 30명을 신청 받으며, 관심 있는 누구나 무료로 신청할 수 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한 관계자는 “내년에도 ‘대담신라(對談新羅)’에서 국민과 함께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며 “이런 행사를 통해 많은 이들이 역사와 우리의 문화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승용 기자  jsr68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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