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한문화 속으로 독립운동사
오늘은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1859.9.30~1925.11.1) 서거일중국 내 최초의 한국 독립운동단체 동제사 결성

'한국사는 나라의 혼' 임시정부 2대 대통령

 

국혼(國魂)은 살아있다!
국교(國敎) 국학(國學) 국어(國語) 국문(國文) 국사(國史)는 국혼(國魂)에 속하는 것이요, 전곡(錢穀) 군대(軍隊) 성지(城池) 함선(艦船) 기계(器械) 등은 국백(國魄)에 속하는 것으로 국혼의 됨됨은 국백에 따라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은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 하지 않는다.
          - 박은식 선생이 지은 <한국통사>(1915년)의 결론 -

 


독립협회 가입하고, 황성신문 주필로 민중계몽 운동을 실행했다. 이 무렵 일제는 러일전쟁을 도발하면서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노골적이고 본격적인 침략 정책을 감행하고 있었다. 더구나 러일전쟁에서의 승전으로 한국에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강제하여 국권을 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게재하여 을사조약의 부당성과 침략성을 격렬하게 비판하자 일제는 이 신문을 정간시켜 버렸다. 그 뒤 황성신문은 1906년 복간되었으나 일제의 방해로 장지연의 복귀는 어려웠다. 때문에 주필로 혼자 남게 된 선생은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황성신문이 강제 폐간될 때까지 각종의 애국적 논설을 발표하여 국민을 계몽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면서 국권회복운동의 저변을 넓혀 갔다.

서북협성학교 오성학교 교장으로 민족교육 실천. 비밀결사 신민회에서 활동했다.

1910년 8월 한국은 일제의 완전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무단정치를 시행하면서 신민회 등 민족운동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통치체제의 안정을 위하여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서북학회월보를 비롯한 애국적인 신문과 잡지를 폐간시켰다. 그리고 선생의 저작을 비롯하여 민족혼이 담긴 간행물을 <금서(禁書)>로 분류하여 그의 발행과 열람을 엄금하였다.

이렇게 되자 선생은 민족혼이 실린 역사서가 모두 압수, 소각됨으로써 일반 국민은 물론 자라나는 다음 세대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긍지를 상실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되었다. 선생은 “국체(國體)는 비록 망했어도 국혼(國魂)이 소멸하지 않으면 부활이 가능한데, 지금 국혼인 역사서마저 불태워 소멸하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탄식하였다. 그리하여 선생은 1911년 5월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역사서를 집필하여 민족혼을 진작할 목적으로 중국 만주로 망명하게 되었다.

만주로 망명한 선생은 서간도 환인현 흥도천에 있는 동지 윤세복의 집에 1년 동안 머물면서 국혼을 발흥시킬 역사서의 저술에 진력하고, 또 이를 재만 한인동포들의 교육 교재로 사용하게 하였다

중국 내 최초의 한국 독립운동단체 동제사를 만들고 총재로서 이끌었다.  “혼이 보존되면 국가는 부활할 것이다.”  비바람 속에서도 붓 놓지 않고 <한국통사>를 완성시켰다. 그 후 신한혁명당을 결성, 대한국민노인동맹단 조직하여 사이토 총독 제거 계획을 실행했다.

“백 번 꺾어도 꺾이지 않고, 열 번 밟혀도 일어나면 최후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 이라 말하며 끝까지 항일투쟁을 하셨다. 임시정부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다가 선생은 인후염과 기관지염이 악화되었다. 그리하여 사임할 당시에는 병색이 완연하게 드러났고, 결국 그로 말미암아 1925년 11월 1일 66세를 일기로 상해에서 서거하고 말았다.

그 순간에도 선생은 “우리가 귀중한 독립운동을 기성(期成)하려면 무엇보다도 첫째 전민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유촉을 남겼으니, 민족 독립에 대한 선생의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선생의 장례는 11월 4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장으로 거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자료 제공 : 정상규의 독립운동가 어플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하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