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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한국인의 멋

한국인의 멋은 서구인은 물론이고 중국인의 것 보다 훨씬 앞서는 멋을 가졌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평생 동안 중용의 멋을 가르치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군자는 중용을 이상으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멋은 중용의 멋을 한 단계 넘어선 ‘어떤(about)’의 경지에 있었다.

이런 삶을 고대 한인들은 이상으로 생각했다. 즉, 그냥 어디에 매이지 않는 ‘어떤(Aboutness)'삶인 것이다.
 
이 ‘어떤’으로 추정되어지는 불확정적인 삶의 태도는 풍만한 인간성과 거기서 나오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이 ‘어떤’의 삶은 어디서나 어떤 행동을 해도 시의적절하고 알맞으며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음을 말한다.

잘 놀다가도 한국인들은 멍석 깔아 주면 주저한다고 한다. 무슨 격식을 갖추어 무대를 만들어 그 무대적 격식에 갇히어 관객과 광대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이것이 ’어떤‘의 삶의 태도이다. 이런 ‘한’의 멋을 지닌 사람은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것과도 하나로 통할 수 있는 자타여일의 경지에 산다. 나아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경지가 열리게 된다. 서구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아폴로적. 디오니소스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다.

야성과 지성을 함께 겸비할 때 우리는 멋이 있다고 한다. 이런 경지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로 수렴하고도 어색하지 않은 ‘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한의 멋은 휘어지는데 있다. 앞으로만 향하던 직선의 방향을 끝 가는 데서 휘어져 처음과 끝을 일치시키는 데서 생기는 비시원적(非始原的)인 멋이다. 또한 우리의 멋은 인위적이 아니다. 마음도 자연적이며 꼴도 자연적이다.

그러나 서구의 멋은 그렇지 않다.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의 정원을 보면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이 너무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잔디를 중머리 치듯 빡빡 깎고 그 둘레까지 직선적으로 각을 만드는 것이 서양정원의 멋이라면 한국적 정원은 전혀 다른 멋이다. 자연스럽게 자라는 잡초와 그 속에 어우러져 화초가 피고 담장에는 나팔꽃이 기어오르는 멋이다.

서양의 멋이 직선적이고 비자연적이라면 한국의 멋은 휘어지는 곡선적인 멋이며 자연적인 모습에 있다. 서양인들이 이분법적 사고의 산물인 법질서로 산다면 우리들은 겉보기엔 무질서해 보이지만 ‘본심’대로 사는 민족이다.

서양 사람들은 집도 도로도 직선이고 성냥곽 같은 빌딩을 짓는다. 그러나 얼마 전만 해도 서울 남산에서 보면 창경원과 종로 일대의 기와지붕들이 살아 있는 청룡들의 꿈틀거리는 등허리같이 굽이쳤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서구식 건물이 다 차지한 이후 이러한 운치는 사라지고 성냥곽을 쌓아 올려놓은 듯 인조도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동대문, 남대문 그리고 고궁(古宮)들의 건물을 보아도 우리는 편안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며 그 모양이 여인들의 버선코 모양으로 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수 천 년의 역사를 겪으면서 처음에는 수직적이고 직선적인 꼴을 이용했지만 이것이 완전한 꼴이 아님을 발견하고 곡선의 꼴을 그리고 기와지붕에서 보인 나선의 꼴을 창조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멋’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적어도 수 천 년 세월을 두고 터득한 생활의 지혜였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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