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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립운동가 신숙 선생 (1885.12.29 ~ 1967.11.22) 서거일

천도교 이념으로 독립전쟁 복무한 한국독립군 참모장

 

신숙(申肅)은 1907년 대한제국 탁지부 인쇄국에서 근무하면서 김남수(金南壽)·김남규(金南奎) 등과 함께 청파동에 문창학교(文昌學校)를 설립하고 육영사업에 진력하였다. 1909년 친일행각을 펼친 일진회장 이용구(李容九) 처단을 계획하였으나 일제의 감시가 삼엄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으며, 이후 천도교 대구 대교구장을 지내는 등 천도교에서 활동하였다. 3·1 대한광복운동 직전에는 독립선언서의 교정과 인쇄작업을 맡았으며, 3·1 대한광복운동 이후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1920년 4월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상해로 망명하였고 천도교 상해전교실을 설치하였으며 천도교 이념에 바탕을 둔 통일당(統一黨)을 조직하였다.

1920년 9월 북경으로 가서 군사통일회의 의장에 선출되어 군사단체의 통일과 무장독립운동 노선을 주장하였다. 1923년에는 국민대표회의에 창조파 대표로 참여하여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국민대표회의가 해산된 뒤 창조파는 국호를 '한(韓)'으로 하는 국민위원회 정부를 세웠으며 내무위원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블라디보스톡·길림·하얼빈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힘쓰다가 1927년 이도하자(二道河子) 부근의 송봉산에 정착하여 신창학교(申昌學校)를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였고, 한인농장을 연합하여 자치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에 선임되었다.1928년 1월 신민부(新民府)의 민정위원이 되어 3부(신민부·정의부·참의부) 통합운동에 참여하였다.

신숙은 1930년 신민부를 중심으로 한국독립당이 창당되자 한국독립군의 참모장으로 활약하였다. 만주사변으로 일제의 침략이 간도에까지 미치자 한·중 연합전선의 결성에 노력하여 한중토일연합군(韓中討日聯合軍)을 결성하여 대정자령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노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간도로 가다가 영구(營口)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 석방되어 일제의 감시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1945년 대한 광복이 되자 동포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귀국을 돕는 일을 하였으며, 1946년 귀국 후에도 동포들의 귀환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천도교 보국당(保國黨) 대표로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좌우합작위원회에서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자료 제공 : 정상규의 독립운동가 어플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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