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군은 원래 황해도 옹진이다. 옹기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구려 때는 옹천홀이라고 불렀다. 백령도는 황해도 해주목에 속한 벽성마을의 부자들과 강령마을의 보부상들이 중국을 왕래하던 곳으로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벽령도’라고 한 것이 나중에 백령도가 되었다.
대청도는 백령도의 남쪽 섬이므로 ‘마녘 섬’이 맑은 섬, 청도淸島가 되어 큰 섬은 대청도, 작은 섬은 소청도가 되었다. 대청도는 고려때 원나라의 귀양지였다. 6.25후 북한에서 우리 관할로 넘어오면서 백령도, 소청도와 함께 경기도 옹진군으로 재편되었다.
연평도는 황해도 연백군 송림면에 딸린 섬이다. 연백평야의 부자들이 이 섬으로 많이 놀러오다 보니 연평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제부도는 지형이 젖꼭지처럼 생겨서 젖부리라고 한 것이 젯부리가 되고 제부도濟扶島가 되었다. 또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들은 부축하여 건넌다는 뜻인 ‘제약부경濟弱扶傾’에서 ‘제부’가 나왔다는 설도 있다. 원래 남양군 신리면이었다.
오이도는 조선 초기에 오즐애吾叱哀, 오즐이도吾叱耳島로 불리다가 정조때 오이도烏耳島가 되었다. 짐작컨대 외딴섬이 외섬, 오이섬이 되어 오이도가 된 것으로 보인다. 참오이는 참외, 물외는 오이로 ‘외’와 ‘오이’가 서로 넘나드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1980년 시화간척사업으로 대부도와 연결되어 지금은 육지가 되었다.
대부도는 화성시에서 바라보면 큰 솥처럼 생겼다. 흉년에는 더욱 그렇게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큰 솥섬, 대부도大釜島였는데 지금은 대부도大阜島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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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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