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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강릉 단오제

 흔히들 역사는 축제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다. 어느 종족이든 축제 없는 사회는 없다. 막힌 하수구를 뚫어 주듯이 개인도 사회도 긴장이 쌓이면 한마당 푸닥거리를 해서 응어리와 매듭을 풀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팽팽해진 고무줄이 끊어지듯 조직은 평형감각을 잃고 만다. 아울러 범죄와 반란, 갈등과 혼란이 분출하여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구석구석에 막힌 찌꺼기들을 말끔히 쓸어내는 사회정화의 의미를 가진 것이 ‘축제’이다. 한마당 살풀이를 통해 개인과 조직은 새로운 활력을 얻고 분위기를 일신하는 재생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강릉 단오제는 뿌리 깊은 민족 축제의 한 원형이다.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구석구석 기사 중 이미지 캡쳐

 강릉 단오제는 여덟 마당으로 이어지지만 절정은 단오인 5월 5일이다. 그러나 사전 행사인 대관령 산신을 모셔오는 음력 4월 보름날의 장관은 이 행사의 백미에 속한다.

 산신(山神)은 신선이요 삼신을 상징한다. 우리 선조들의 가슴에 살아 있는 “여호와”이다. 부귀와 장수, 다남(多男)과 만복을 가져다주고 잡신과 재앙을 막아주는 신통력을 가진 절대자이면서도 인자한 할아버지 상 그대로다.

 호호백발에 대추빛 얼굴, 신비스런 눈빛,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줄기 안개와 함께 나타나는 “산신”은 바로 민족원형의 이미지요 정신적 지주였다. 그 산신은 곧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을 의미한다. 또한 삼신일체로 믿었다.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라는 이치와 같다.

 이 뿌리사상을 강릉 단오제에서는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아직도 원형이 고스란히 잘 보존되어 있다.

 대관령 산신제는 4월 보름 날 저녁에 거행된다. 대관령 휴게실에서 그리 멀지 않는 좁은 산길을 따라 오르는 평범한 산골짜기가 산신제 장소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곳에는 작은 산신당과 그 아래쪽에 성황사라는 낡은 건물이 있는 점이다.

작은 산신당 양쪽 기둥에 써놓은 현판에는 “하늘의 도리를 다하면 복을 받으리라”(應天之三光, 降人間之五福)는 글귀가 이채롭다. 여기에 “삼광”은 바로 “삼신”을 뜻하는 것이다.

 산신당 안에는 한 분의 산신이 앉아 있고 성황사에는 백마를 타고 어깨에 활을 멘 장군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거느리고 가는 성화가 그려져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두 건물 역시 일제시대에 수난을 당해 광복 후 재건했다 한다.

 산신제는 풍악으로 시작된다. 이채로운 것은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엄격한 유교식과 무당이 주관하는 신명나는 당굿으로 혼합형태로 이루어지는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 속에 묻혀있는 지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산신제의 압권은 “신목(神木)모시기”다. 제관이 준비한 나무 가지를 잡자 신이 내리는 전율의 순간이 전개되었다. 나무를 잡은 제관(祭官)의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며 이어지는 강신(降神)의 절차는 불가사의한 신비를 체험하게 했다. 제관이 잡은 나무가 잘려지고 잘려진 나무는 신목(神木)이 된다. 신목은 개선장군처럼 풍악을 앞세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숲 속을 빠져 나온다.

 신목이 서낭당에 이르자 사람들이 달려가서 색색이 옷감 띠를 입힌다. 울긋불긋 옷단장을 한 신목은 새로운 신선미와 친근감을 주어 사랑스럽고 귀엽고 거룩한 형상이 된다.

 옷단장을 마친 신목은 차에 실려 강릉 여(女)서낭당으로 모셔져 단오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단군 정신을 기렸던 축제의 원형이 유구한 세월 속에서도 풍화하지 않고 면면이 이어왔다는 사실은 감동적이다. 민족원형이 갖는 불가사의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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