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하운드와 사람이 경주하면 언제나 개가 먼저 들어온다. 몸무게에 비례해도 그레이하운드의 근력은 사람보다 나을 게 없다. 그러나 경주에서 이긴 쪽은 언제나 개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사람은 달리면서 줄곧 결승점이 얼마나 남았는지 염두에 두고 달리지만 개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린다. 의욕이 부침하는 것은 사람이며 그것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한다. 개는 온몸으로 달리기에 몰입할 뿐이다. 개가 사람을 이기는 이유이다.
‘하나’의 위력은 몰입과 정성이다. 부부가 하나 되면 가정이 화목해지고 상하가 하나 되면 스마트한 팀워크로 어떤 난관도 돌파한다. 자연을 닮아가면 힐링이 되고 불치병도 이긴다. 우리문화의 키워드인 ‘한’도 대상과 하나 되는 것이다. 하나가 사랑의 묘약인 이유다.
고인이 된 소리꾼 박동진 옹의 구수한 입담과 함께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가 국민멘트가 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소중한 우리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말문이 막힌다.
식민지굴레 속에서 온갖 박해를 받았던 후유증일 수 있고 고대사를 말살한 식민사관의 폐해일 수도 있다. 세계 최빈국으로 추락했던 1950년대를 생각하면 우리 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이니 대답할 때가 되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우리속담도 하나되는 몰입과 정성의 산물이다. 이른바 ‘한’은 집단무의식인 민족원형질이다. 이제 우리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한’민족이고 대‘한’민국에 살며 의식주의 명칭도 ‘한’식과 ‘한’옥에 ‘한’복이었다.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는 동안 철저히 파괴한 것도 민족원형인 ‘한’을 말살하는 것이었다. 합방 후에 가장 먼저 한 일도 고조선 없애기와 ‘한’자가 든 지명이나 신문제호들을 박탈했다.
한글학자 한갑수씨는 한을 시(時), 공(空), 질량(質量)으로 분석했다. 시간적인 개념인 한겨울은 겨울전부를 뜻하지만 동시에 겨울의 중심부도 의미한다. 공간개념인 한길은 넓다는 뜻이지만 한가운데는 중심의 뜻을 가진다. 질량개념으로도 ‘한갓’이 최소한의 개념이라면 ‘한껏’은 최대한의 개념이란 점에서 서로 상반되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한’의 사전적 의미가 무려 22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처럼 한’은 유구한 낱말이다. 언어는 고대사상의 화석이고 민족원형을 추출하는 근간이다. 우리문화의 에센스로 시대와 역사를 통합하는 상징체계였다. 천지인합일의 원형을 보여준 건국신화와 끈끈한 정이 녹아있는 민초들의 삶이 ‘한’의 인문학적 모태가 되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해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나는 천부경의 키워드도 하나이다.
또한 하나는 모든 종교들이 인격화하여 ‘님’자를 붙임으로써 하나님이 되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는 하나를 낳는다(道生一)고 했고 불교에서도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했으니 하나는 동양철학의 꽃이기도 하다.
우리역사 속에서도 고구려처럼 중원을 호령하는 강국의 비결도 ‘한’이었고 분열로 치달았을 때는 천추에 한(恨)을 남겼다.
테러와 환경오염 등 세계문화의 위기를 구원할 묘약도 인류가 하나 되는 일이다. 21세기에 ‘한’문화가 주목받는 이유다. 그레이하운드가 아니라도 세계인들이 즐겨 시청하는 우리 드라마의 정(情)문화나 한류열풍에서 그 답을 찾을수 있다. 사랑의 묘약은 누구나 갖고 있는 ‘한’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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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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