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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혜강 최한기

혜강 최한기(1803-1877)는 최항의 15대 손으로 몰락한 양반이었다. 정약용과 동시대에 살았지만 사상은 전혀 다르다. 다산이 유학이란 구질서의 완성에 있었다면 혜강은 기존질서와 단절된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정립했다.

헤강 최한기의 초상화, 사진출처=독서신문 기사 중 화면 캡쳐

도올 김용옥도 조선조라는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경학(經學)을 뒤집고 새로운 사고체계인 '기화지리(氣化之理)'를 정립한 것은 위대한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했다.

최한기를 '한'사람으로 꼽는 이유는 그의 사상인 '주기론(主氣論)'이 지극히 '한'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원효와 율곡 등 전통적인 한국학을 이었고 그 끝자락에 우뚝 선 큰 봉우리로 위대한 사상가였다.

흔히 한국학은 최한기에서 끊어졌다고 할 만큼 그의 학문적 역량은 '한'의 총체적 인식을 하고 있다.

그는 2천년 동안 동양의 최고가치인 '성인(聖人)'을 뒤집고 '기화(氣化)'라는 새로운 가치를 설정했다. 그에 의하면 천경(天經)은 곧 객관적 물리법칙을 말하고, 성경(聖經)은 개인의 가치관의 총체이다. 후자는 전자를 획득해야 하는 것으로 본 것은 '한'의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와 같다. 

그의 주기론(主氣論)은 큰 하나로 돌아가는 합일주의다. 기(氣)의 작용은 운동이지만 동(動)과 정(靜)을 하나로 보았다. 동 가운데 정이 있다고 보아 동과 정을 구별하지 않는 데서 기(氣)의 본질을 찾았다. 정지와 운동은 둘로 나타나지만 그 뿌리는 하나인 ‘기’이다. 

우주만상은 기(氣)의 운동이고 생사도 기의 취산(聚散)으로 보았다. 그는 기(氣)자체에 무한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기즉신(氣卽神)이요 신즉기(神卽氣)라고 하는 일원론적 사상을 세웠다. 또한 신(神)은 기의 정화로 정신적 방향이고, 기(氣)는 신의 기질로 물질화로 보았다.

따라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적 발상을 부정하고 있다. 기를 떠나서 신이 없기에 ‘신기(神氣)’라 했다. 정신의 명석함(밝음)은 신에서 나오고 에너지의 힘은 기에서 생긴다. 오직 밝음과 힘으로부터 만물의 무한한 묘용(妙用)이 나온다.

신(神)과 기(氣)를 하나로 보는 합일론은 곧 ‘한’이다. 혜강은 ‘한’을 ‘기’로 표현하면서 기는 가지 않는 곳이 없지만 항상 본래 위치로 되돌아온다. 그러기에 천한 것은 귀한 것의 근본이 되고 낮고 높은 것도 하나가 된다고 본다.
 
또한 혜강은 천지만물은 유(有)에서 생겨나지만 그 근원은 무(無)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러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의 근원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무’인 것이다. 따라서 기는 만물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유와 무를 하나로 보는 것은 '한'의 관점도 동일하다. 대체로 혜강의 주기론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보면 한의 전일(全一)사상과 같다. 

이와 같은 전일사상은 그의 경험론에서도 반영된다. 그는 경험을 정신적 신(神)과 에너지인 기(氣)의 묘합 작용으로 보았다. 즉, 순수한 정신주의나 물질주의의 구분을 초월한 과학적 사유를 권장하고 있다.

그는 경험의 조건으로 ‘신’기인 주체와 대상인 객체, 감각기관인 매체로 파악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외형상으로는 나누어지지만 내면적으로는 하나다. 하나이면서 셋이라는 삼즉일(三卽一)의 논리도 '한'의 전일사상과 동일하다.
 
끝으로 그의 다양성 화합론도 한의 조화성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저서 '인정(人政)'에 의하면 학문하는 사람이 독선과 배타를 일삼으면서 반대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대중이 공인하는 참된 진리를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도 지극히 '한'적이다. 우리가 그를 마지막 큰 '한'사람으로 예우하는 까닭이다.  

도올 김용옥은 최한기의 사상을 서구 근대문명이 지향한 이성주의적 상식을 극복하는 보다 포괄적인 '기화(氣化)'의 상식을 지향한다는데 미래학적 매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의 세계에 살면서도 비상식이 팽배하고 있는 시기에 최한기의 상식세계는 21세기 인류문명의 전개에 많은 시사점을 던질 것이라고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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