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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학자 장계황의 『독도 고찰』 - 독도는 우리 땅 2

영유권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국가단위에서 주장 하여야 한다. 

영유권은 소유권과 다르다. 소유권은 개인이 어느 국가에서나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취득을 할 수 있는데, 영유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 등록업무를 하여야만 개인 소유권이 인정이 된다.

즉, 정부가 우선 영유를 해야 가능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동산을 매입 할 시 국가가 영유하고 있는 영토 내에서 개인이 소유를 하려면 정부가 취급하는 등기부등본에 기록을 하여야만 본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영토를 주장하려면 우선하여 국가 단위에서 영유권 선언을 하여야 하는데 독도는 1900년에 대한제국에서 영유권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독도의 행정권을 명확히 했다. 즉, 오늘날의 국제법에 맞는 영유권 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미군정 시절에 대한제국의 영유권을 중심으로 행정을 해 왔으며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은 미군정으로부터 영토와 국민을 이양 받았기 때문이다.

1900년 대한제국 내부는 그 이전까지 도감이 관할하던 울릉도를 울릉군으로 승격시켜 정식 편제 안에 편입키로 했다. 이에 10월 22일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는 건’ 청의서를 의정부에 제출하여 25일 재가를 받아 대한제국 관보에 게재하였다. 전체 6개조의 칙령 중 제1, 2조의 내용이다.

 

대한제국 칙령과 제41호

제1조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바꾸어 관제 안에 편입한다.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

 

여기서 말하는 석도가 독도인 것이다. 독도는 돌섬의 사투리로서 일본은 제2조의 관할구역 ‘석도’를 두고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타당치 않다, 석도는 우리말로 돌섬 독섬이 되는 것이다.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 독도가 되는 것이다. 독은 돌의 사투리로 이는 1938년 간행 된 조선어 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족보 있는 단어이다.

 

1900년 이후 주장은 의미가 없다

이미 1900년에 대한제국에서 영유권을 국제법에 맞게 반포를 한 것으로 그 이후에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본은 이후 1905년에 독도를 비어 있는 무인도라 하며 다께시마라고 하여 1905년 2월 22일 일본 정부가 아닌 시마네현에서 편입 고시하여 지금도 다께시마의 날로 기념 하고 있다.

시마네 현 고시가 관보에 게재되지 않은 회람용이었던 것과는 달리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발효 2일 뒤 관보에 게재되어 국내외에 공인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대한제국 관보 제1716호로 게재 되어있다.

 

대한제국 관보 제1716호

 

영유권은 국가의 등록업무로부터 시작이 된다. 다시 말해 법무부의 등기부등본이 있어야 토지로서 인정을 받는데 등기부등본은 국가의 고유 업무이다.

시마네현에서는 자체적으로 등기를 만들 수 없다. 임의 편입고시인 것이다. 일본의 정부가 아닌 지방자치의 현에서 영유권을 주장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당시 정식 관보에 기재 된 사실도 없이 회람용 문서만 존재 할 따름이다.

국제법에 의거한 대한제국의 칙령 제 41호에 의해 영토를 명확히 한 것은 이후 미군정 시기에 호적과 지적의 통치 행위에 있어서 기본이 되었으며 이후 정부수립과 동시에 이를 그대로 이양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칙령 제41호는 국제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

 

 

 

 

 

 

 

 

 

覺永堂 學人
靑島 장계황 / 行政學博士
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한러공생위원회 대표
대한민국ROTC중앙회 통일복지위원장

 


사단법인 ROTC 통일정신문화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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