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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가방과 보자기

후기산업사회에 걸 맞는 또 다른 한국적 기술원형은 ‘인간과 도구의 일체성’에서 찾을 수 있다.

물건을 넣고 다니는 도구로 한국인은 보자기를 만들고 서양인들은 가방을 만들었다. 얼른 생각하면 가방은 세련된 문화인 것 같고 보자기는 원시적인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양자는 인간과 도구와의 관계에서 분리와 일체라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보자기와 가방 이미지, 사진출처=온라인쇼핑몰

 

가방은 넣은 물건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 자체로 독립되어 있다. 그러나 보자기는 그 싸는 물건의 부피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또 쌀 것이 없으면 하나의 평면으로 돌아가 사라져 버린다. 가방과는 달리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과 도구가 일체화 되어 있다.

서양의 식탁이나 침대도 인간과 도구가 가방처럼 따로따로 노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한국의 이불이나 요는 누울 때는 펴고 일어나면 갠다. 사람이 없을 때도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서양식의 침대와는 전혀 다르다.

오늘날 파괴공학이란 특수한 기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을 보면 서구의 기술이 지니고 있는 맹점을 알 수가 있다. 보자기식 기술에는 파괴를 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모든 도구의 기능이 그를 필요로 하고 있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연한 가변의 기동성이 후기 산업사회에서 각광받는 새 기술이 된다.

보자기문화는 인간과 도구가 일체화되는 인간 우선의 사회를 만든다면 가방문화는 인간보다 이념이나 제도 우선의 사회가 되고 이런 사회일수록 인간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

옷이 몸에 맞추어서 존재하는 사회가 보자기 문화라면 몸이 옷에 맞추어야 하는 사회가 가방문화이다. 오늘날 산업화 사회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병폐와 부작용도 근원적으로는 이러한 제도적 모순과 왜곡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방의 기능과 돈키호테를 연결시켜 보면 흥미 있는 결과를 볼 수 있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기사이기 때문에 기사의 갑옷을 입는다.

갑옷이란 상자 속에 자신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 무거운 갑옷 속에 들어가고 나면 몸을 자유롭게 운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절대 갑옷을 벗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갑옷이란 형식 속에 있어야 기사가 되기 때문이다. 형식이 그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이 산업사회의 특징이다. 사람이 위주가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옷이 중요하다. 서양의 산업시대는 이런 사고방식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후기 산업사회는 바로 보자기와 같은 다능적인 기능이 살아있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한국적 기술원형에서 보면 고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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