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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하늘의 우물

 가장 위대한 유대 왕이었던 다윗은 정삼각형 2개를 겹쳐서 꼭지점 6개의 별 모양으로 자신의 고유문양을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이 문양을 ‘다윗의 별’이라고 부른다. 이 별은 지금도 유대인을 보호하는 신의 방패로 주술적 의미를 지니며 이스라엘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작가 최인호씨는 고구려 토기인 자배기와 나팔입항아리에 새겨진 ‘#’문양을 처음 발견하고 다윗의 별이 연상되어 숨막히는 긴장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문양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역사탐험의 대장정에 오른다. 그의 소설 ‘왕도의 비밀’이 쓰여진 동기이다.

 본인의 표현대로 이 ‘#’문양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고구려 역사의 우물, 그 심연 속으로 두레박을 타고 내려가게 된다. 그는 전국을 누볐고 중국의 심양, 대련, 대능하 유적지,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4만Km를 헤맸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문양의 출처가 우물 정(井)자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

한 케이블방송에서 우물 정(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출처=STB상생방송

 그냥 우물도 아닌 백두산 천지(天池)를 은유하는 ‘하늘의 우물’에서 따온 문양임을 깨닫고 거룩한 이미지를 확인한다. 따라서 이 문양은 고구려인들이 하늘의 아들, 물의 손자임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는 광개토대왕은 역사 속에 기록된 대왕이 아니라 나를 낳은 조국이며 또한 나의 아버지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진솔한 독백으로 고구려와 ‘#’문양에 대한 그의 절실한 애정을 감지할 수 있다.

 역사라는 고경(古鏡)을 통해서 우리들은 자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민족은 흥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망한다. 깨진 기왓장에도, 토기하나에도 그런 역사의 진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역사의 최고 영주 광개토대왕은 왜 그렇게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것일까? 64개의 성과 1400여 개의 촌락을 정벌한 것은 그 땅이 본래 고조선의 영토였고 우리들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개토대왕은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이 백두산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던 단군 신화를 현실적 공간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또한 그런 자신의 의지를 ‘하늘의 우물’인 백두산 천지에서 신성한 이미지를 빌려와 우물 정자(井)의 문양을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양에는 천손족(天孫族)으로서의 민족자존심과 광활했던 고조선 영토를 찾기 위한 대왕의 고토(古土)회복의 염원이 담겨있다. 천년을 뛰어 넘어 다가온 이 문양에는 고구려인들의 거친 숨결이 서려있다.

 오늘 우리들의 핏줄 속에도 도도히 흐르는 대왕의 기백과 뜨거운 용암 같은 한민족의 원형질을 느끼게 한다.
 
 중국 역사학자들이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소수민족 중 가장 우수한 한민족에 대한 경계심과 구소련 붕괴 후의 민족국가 형성에 관한 위기의식도 작용한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헌법을 고치면서까지 자위대를 재편하고 자나깨나 ‘돌아와요 부산항’을 염불(?)하고 있다.
 
 기미년 31운동 100주년을 보내면서 작가 최인호의 마지막 독백인 “역사는 되풀이되어 돌고 도는 것, 우리도 눈을 떠야 한다.”는 말이 지워지지 않는다.

 뉴스광장에는 밤낮으로 구린내 나는 돈 이야기들이다. 고구려를 생각하고 현해탄을 굽어보며 우리도 이제 눈을 떠야 할 때이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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