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미국 TV에 소개된 일이 있었다. 새로운 공장 낙성식 장면으로 회장이 손수 마이크를 잡고 구성진 노래를 부르자 종업원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이어서 지체 높은 회장님과 땀 냄새나는 현장근로자가 모래판에서 샅바를 쥐고 승부를 가리는 씨름판이 벌어졌고 응원전도 열을 올렸다.
화이트컬러인 관리직과 블루컬러인 생산직의 구별이 엄격한 서구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미국 TV가 흥미로운 가십꺼리로 소개할 만큼 문화충돌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런 풍경이다. 현대그룹이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것도 정회장이 근로자와 하나 되는 신바람 문화를 잘 적용했기 때문이다.
일본교포 유 봉식 회장의 MK택시의 경우는 더욱 극명하다. 종업원을 가족처럼 생각한 그는 택시회사 회장들의 연수에서 택시기사는 소모품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기사는 소모품이 아니라 내 가족이란 생각으로 사원주택을 건립했다. 처음에는 기사들도 믿어지지 않아 ‘우리를 갖고 노느냐’는 식의 반대데모도 했지만 완공되자 앞 다투어 들어갔고 결근일수와 사고율이 줄면서 모범택시회사가 되었다.
또한 고객을 위해서 택시요금을 내려야 한다고 역설하자. 동업자들이 ‘미친 짓’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그는 3년간 법정투쟁을 통해 이겼다.
이 유별난 돌출(?)행위로 세계 언론에 주목을 받은 유회장의 발상은 바로 자타일여의 홍익인간사상이다.
특히 MK택시회사에는 회장실이 없다. 모든 임원은 의무적으로 택시기사 자격증을 가져야 하고 신체장애자는 기사가 가족처럼 모셨다. 시민의 소리를 듣고 불친절한 기사는 바로 파면조치를 했다. MK택시가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 된 이유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사례들이고 한문화의 전형적인 성공사례들이다. 유라시아 대륙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원형이다.
또한 이러한 민족원형은 언어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은 ‘나’라는 말 대신 거의 ‘우리’라는 말을 쓴다. 나는 단수이고 ‘우리’는 복수지만 한국어에는 주격에 관한한 단수와 복수의 구별조차 모호하다.
‘우리 아내’라고 소개하면 외국인이 한 아내가 여러 남편을 거느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웬만한 대상을 두고도 ‘우리’라는 말을 쓴다. 아주 편한 관용어로 쓰인다. 이것은 한국인이 어떤 집단에서든 일체화되려는 본능적인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흐른다.
‘나와 남’이란 말도 교훈성이 있다. 남이란 나를 네모로 묶어버리면 남이 된다. 나를 가둬버리면 남이 되고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픈 것이다.
나를 열어두면 모두가 나와 같은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쁜 사람이란 말도 같은 어원이다. 나만 아는 사람이거나 나뿐인 사람이 ‘나쁜’사람이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언어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말의 이미지나 언어 속에 숨은 메타포는 감칠맛이 있다. 나와 너의 차이도 모음 한 가닥이 다를 뿐이다.
한국인의 자타일여(自他一如)의식은 뿌리 깊은 역사와 함께 토속어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라는 말속에는 너와 나,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인간존중사상이 깔려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심성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우리속담도 뿌리 깊은 우리문화의 ‘아포리즘’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민본사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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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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