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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일기를 어떻게 적었을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종덕)는 “2015년부터 전국에 전하고 있는 조선 시대 개인일기 현황을 조사하면서, 올해는 그 가운데서 이제까지 소개되지 않았던 8편을 선별하여 「조선시대 개인일기 국역총서」를 발간하였다.”고 밝혔다.

조선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조선왕조실록 등 공식기록 이외에 문집, 편지, 일기 등의 민간기록이 있다. 특히, 일기는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솔직하고 생생한 현장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개인일기는 대다수가 행서와 초서로 쓰인 필사본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읽기가 어렵다.

이번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8편의 조선시대 개인일기는 초서 또는 행초서로 쓰여 읽기가 어려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기들을 선별하여 사진, 탈초(脫草), 국역(國譯), 해제(解題)를 붙여놓았기 때문에 일반 국민부터 전문 연구자까지 필요에 따라 쉽게 읽을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일기 가운데『경상도하양현일록(慶尙道河陽縣日錄)』은 김경철(金敬轍, 1698~1764)이 경상도 하양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쓴 것이다.
 
『북행일기(北行日記)』는 서종태(徐宗泰, 1652~1719)가 북도별견시관(北道別遣試官)으로 임명되어 함경도 길주(吉州)로 가서 별시(別試)를 시행하고 돌아와 보고를 올릴(복명, 復命)때까지 4개월간에 걸쳐 기록한 일기다.『북행일기』에 실려 있는 장계(狀啓)는 함경도 별시의 실행 경위와 결과로, 문집은 물론『승정원일기』를 비롯한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

『온계선생북행록(溫溪先生北行錄)』에는 이해(李瀣, 1496~1550)가 어사(御使)의 명을 받고 함경도를 다녀온 24일간의 견문과 경험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일기는 그의 문집인『온계일고』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은 유일본이다. 저자 본인이 친필로 수정하고 보완한 원고로 후대인들의 삭제나 수정을 거치지 않은 본래의 기록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정간공일기(貞簡公日記)』에는 정탁(鄭琢, 1526~1605)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재직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기백재일기(己百齋日記)』는 조선 후기에 정언(正言, 사간원 정6품 관직), 사간(司諫, 사간원 종3품 관직) 등을 지낸 김복휴(金復休, 1724~1790)가 쓴 친필일기로 한양에서 주로 생활한 소북계(小北系) 사대부의 일상을 볼 수 있어 가치가 높다.
 
『관동일록(關東日錄)』은 작자 미상으로, 저자가 숙종 때에 강원도 양양 상운역(祥雲驛)의 찰방(察訪)으로 재직할 당시 관할지역의 역참을 점고(點考)하면서 주변을 유람한 것을 기록한 일기다. 업무와 유람을 병행하였지만 주변의 경치와 풍광을 설명하고 감흥이 일어나면 시로 읊었으며, 거의 매일 5언이나 7언으로 절구와 율시를 읊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일기의 저자는 문학적 소양과 풍류가 깊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유일기(東遊日記)』는 송주상(宋周相, 1695~1752)의 금강산 유람 일기로 자필로 쓴 수고본(手稿本)이다.

『해월헌계미일기(海月軒癸未日記)』는 조선 선조 재위 시기의 문신인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이 장인어른을 간호하고, 임종 후 운구까지 약 3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치병일기다. 당시 조선의 의료상황과 장례절차를 알 수 있어 자료적 가치가 있으며, 관을 육지에서 운반하지 않고 배에 실어서 운반하는 상강(喪舡)의 풍습도 기록되어 있다.  

이번에 발간한 책자는 국·공립 도서관과 국내외 연구기관 등에 배포할 예정이며, 원문을 비롯해 그동안 조사 내용은 국립문화재연구소(www.nrich.go.kr,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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