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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산책』 - 고려 건국와 역사적 의미

이 코너는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의 월간지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기사로 내어 많은 이들이 남북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올바른 정보를 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하였습니다. - 편집인 -


 
북의 역사상식란을 시작하며....


여기에서는 최근 북녘에서 발간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인터넷 신문 잡지들에 실려 있는 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의상 발표된 신문 잡지 소개는 생략한다. 짧은 역사상식 이야기들을 통해 북녘에서는 우리나라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를 엿볼 기회로 된다. 대체로 원문을 그대로 살려 소개하겠으나, 우리의 문법체계에 맞지 않거나 생소한 단어들은 우리 것에 맞도록 고쳐 정리했다.
 
① 고려건국과 그 역사적 의의
 
우리 민족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는 10세기 초에 고구려와 같은 강대한 나라를 재건하고 국토통일을 지향하며 봉건통치배들의 폭정을 하루빨리 끝장내려는 인민들의 열망을 반영하여 세워졌다.
 
901년 왕으로 된 궁예가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고 한 것은 당시 인민들 속에서 고구려와 같은 강대한 나라를 세우려는 지향이 강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통일에 대한 열망도 매우 높았다. 이미 통일에 대한 민족의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여 고구려는 삼국통일을 거의 완성단계에 올려세웠으며 그 열기는 고려 시기에 더욱 고조되었다. 태봉국 말년에 궁예의 반대파들이 왕건이 앞으로 국토를 통일할 인물이라고 암시하는 《도참설》들을 널리 퍼뜨린 사실에서 그 일단을 알 수 있다.
 
태봉국 안에서 궁예의 폭정은 극도에 달했다. 궁예의 강권과 전횡, 권모술수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은 인민들의 분노와 반항심을 분출시켰으며 이와 같은 현상은 지배층에까지 퍼져갔다. 이러한 사회역사적 배경 속에서 918년 왕건은 측근자들과 함께 정변을 일으켰다. 왕건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왕궁으로 쳐들어갔는데 수도와 그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합세하였으며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궁예는 왕궁을 버리고 도망쳤다.
 
왕건은 왕위에 오른 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하고 수도를 개경(개성)으로 정했다. 고려는 1392년까지 수백 년 동안 존재했다. 고려의 건국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커다란 사변적 의의를 갖고있다.
 
우선 고려의 건국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계승국으로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천년강국으로 자랑 높았던 나라였다. 고구려는 민족의 지향인 삼국통일을 다그쳐 5세기말~6세기초에 방대한 영토를 차지함으로써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구려 이후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는 발해로 이어졌으며 그 정통성은 10세기초에 세워진 고려로 확고히 계승되었다. 왕건이 고구려의 옛 남부지방에서 고구려 유민들의 적극적 지지 속에 나라를 세웠으며 국호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고려라고 한 것은 그 계승국의 면모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결국 고구려의 계승국인 고려의 건국으로 우리 민족국가의 정통성은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고려의 건국으로 우리나라의 첫 통일국가형성과 민족의 통일적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다.
 
고려는 고구려의 통일정책을 계승하여 국토통일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갔다. 포섭정책으로 주변의 봉건세력들을 복속시키고 서경(평양)을 중심기지로 꾸려 북방진출을 다그쳐나갔다. 그리고 926년 발해가 멸망하자 동족의 나라인 고려로 찾아오는 수많은 유민들을 적극 받아들였다.한편 고려는 후기 신라를 포섭하고 후백제를 군사적으로 제압하였으며 마침내 936년 국토통일을 이룩하였다. 고려에 의한 국토통일로 민족의 통일적 발전이 이룩될 수 있었다.
 
고려에 의한 국토통일이 이루어짐으로써 우리 인민은 민족의 단합된 힘과 지혜로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경제와 문화를 높은 수준에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고려의 국력과 발전된 문화가 꽃피웠으며 우리나라는 《코레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이처럼 고려의 건국으로 하여 우리나라 역사에서 첫 통일국가가 등장했으며, 그와 더불어 우리 민족은 자기의 존엄과 슬기를 더욱 높이 떨치며 자랑스러운 발전의 연대기를 수놓을 수 있었다.
 

개건된 고려 태조 왕건릉, 사진제공=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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