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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건국을 신화로 치부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행태
28년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야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30여개 박물관에서 가야유물을 모았다. 2019년과 2020년에 걸친 대표적인 전시회다.
 
이 전시를 위해서 지난해 10월 16일 김해 수로왕비릉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파사석탑을 모셔왔다. 가야의 건국과 허황옥과의 결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유물이다. 
 
박물관은 대표유물로 전면에 내세우게 되었다. 고려대팀의 파사석탑 산지와 특성을 분석 의뢰에서도 한반도에는 없는 돌이라는 중간 연구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12월 3일 전시를 오픈하고 나서 사흘도 채 지나지않아 언론들은 역사학계의 의견을 받아서 다투어 가야전시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검증 안된 유물까지 ‘묻지마 전시’…관객 우롱한 가야전 (한겨레,12.09) "이라는 등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가야 건국과 결혼이야기가 신화이고 허구이고 상상인데 박물관이 실존 역사처럼 전시해놓았다"라며 신랄하고 자극적인 언어로 비난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역사학계는 "허황옥이 가져왔다는 파사석탑도 허황옥도 모두 허구이거나 신화속 인물"이라며 유물 교체나 설명 추가를 요구했다. 
 
결국 전시를 개최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전례없는 유물 교체와 설명글 추가 및 변경 등을 단행했다. 항복선언을 한 것이다. 
 
가야 흙구슬 처음 전시된 부분 사진
필자는 다시 한 번 국립중앙박물관 가야 전시를 찾았다. 처음과 바뀐 부분을 살펴보았다. 몇가지가 바뀌었다. 디테일한 부분은 못 보았을 수 있다.  
 
가야 흙방울 전시 공간은 다른 유물들과 함께 안쪽 구석으로 바뀌었다
먼저 <거북 문양을 새긴 흙구슬>이라는 제목만 붙어있던 유물은 처음 들어오는 공간에서 구석진 전시공간으로 옮겨졌다. 수장고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아래와 같은 관람 주의사항(?)이 붙었다. "이 방물에는 거북,관을 쓴 남자,하늘에서 내려오는 금합 등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추상적으로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파사석탑은 이번 전시의 대표 유물 중 하나다. 고유제 즉, 제사를 지내고 가져온 유물이다. 그런데 박물관 측은 파사석탑 전시 공간에서 다음 전시 공간으로 건너가는 문(門)의 바닥에 글자를 흰색으로 크게 붙여놓았다.
 
'신화에서 역사로'
 
"여기까지는 신화였습니다. 잘 보셨구요 다음은 역사공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라는 안내다.  파사석탑 전시 공간까지는 '신화'의 공간이고 다음 유물 전시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역사'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삼국유사 가야국기에 있는 김수로왕의 건국이야기는 모두 상상이며 허구라는 거다.  
 
고대사의 어느 결혼보다 가장 디테일하고 구체적인 결혼 과정이 담겨져 있는 삼국유사 가락국기 결혼 부분. 일연 스님이 현장에 가서 만져보고  확인했던 파사석탑. 이 모든 것이 신화와 상상과 허구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허구가 아니라는 것은 다음 칼럼에서 밝히기로 한다)
 
물론 임나일본부가 기록되지 않은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일제 관변학자들이 만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아직도 우리 역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고구려의 건국도, 백제의 건국도, 신라의 건국도 신화시하고 불신하는 마당에 가야의 건국을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 학계의 현실이자 한계다. 
 
일제 식민지 해방이후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 식민사관의 끝자락을 붙잡고 연명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이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을 학계가 단정적으로 선을 긋는 부분과 아직도 학문카르텔이 작동하는 박물관을 보며 아쉬움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지금은 한일간 불매운동을 넘어선 역사전쟁을 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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