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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 선생 순국 100주년
100년전인 1920년 8월  독립운동가이자 환단고기 편저자인 운초 계연수 선생은  밀정 감영극의 밀고로 일제에 의해 참혹히 죽임을 당했다. 
 
계연수 선생 초상화
계연수 선생은 어떤 분인가? 선생은 1911년 항일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의 출판 자금 지원을 받고 호남 3걸로 불리는 항일독립투사 해학 이기 선생의 감수를 받아 역사서 다섯 권을 묶어 『환단고기』를 펴낸 항일 독립운동가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을 강제침탈당한 다음해인 1911년 음력 5월 5일 운초 계연수 선생은 일제의 총칼을 피해 묘향산 단굴암에서 다섯 권의 사서를 묶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계연수 선생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계연수 선생의 <천부경> 입수 경위  등을 기록한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1920년)과 <해동인물지> (1969년) 등이다. 
 

운초 계연수 선생(1864~1920)은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나 어려서부터 한 번 보면 바로 외울만큼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동방 한민족의 옛 역사와 민족정신에 관심이 지대했던 그는 27세(1890)때까지 약초를 캐어서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여러 양반가와 사찰에서 비장하던 서책과 금석문, 암각문 등 각종 사료를 수집하였다. 

34세 되던 1897년 해학 이기 선생의 문하로 가르침을 받아 1888~1889년까지 2년 동안에 『단군세기』, 『태백진훈』, 『태백일사』, 『참전계경』, 『천부경요해』 등을 간행하였다. 해학 이기 선생과의 만남은 계연수 선생이 역사를 밝히려는 뜻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기 선생 : 그래픽 출처 : 상생방송
계연수 선생은『삼성기 上』과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을 옮겨 적었고 해학 이기 선생이 이를 일일이 감수했다. 
 
 1909년 대영절(3월 16일)에 이기, 나철 등이 단학회를 창립하고 그해 5월 5일에 강화도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려 삼심상제님께 이를 고할 때, 계연수 선생도 그 자리에 참여하였다. 두 달 후에 이기 선생이 단식하여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자 계연수 선생이 그 뒤를 이어 단학회 2대 회장을 맡았다. 
 
선생은 1911년 항일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의 출판 자금 지원을 받고 다섯 권을 묶어 『환단고기』30권을 펴냈다. 
 
책의 범례에서 계연수 선생은 “환단 이후로 계속 전수되어 온 삼일심범(三一心法)이 진실로 이 책 속에 들어 있으니, 동방 대광명의 참 진리가 중흥하는 기틀이 아니고 무엇이랴! 손발이 절로 춤추며 흥겨워 외치고 싶고 기뻐서 미칠 듯하도다!” 라고 벅찬 심정을 토로했다
 
스승 이기 선생이 1909년 절식(絶食) 자진한 후 계연수 선생은 만주로 건너갔다 (양종현 선생 증언). 만주 관전현은 독립운동가와 열사들이 수시로 모여 강론과 훈련을 하던 곳 이다. 
 
운초 선생은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하며 혈맹을 맺고 천마산대와 서로군정서 등에서 활동했고, 배달의숙에서 후학을 길러냈다. 1914년 3월 16일(대영절)에 계연수, 이관집(이유립의 부), 최시홍, 오동진, 이덕수, 이용담, 전효운, 박옹백, 양승우, 이태집, 서청산, 백형규, 등의 12명은 제천혈맹을 맺고, 민족주의 교학과 사관을 정립하여 항일 독립운동에 힘쓰기로 결의하였다. 
 
1915년 10월에는 박응룡, 정창화, 박용담, 김병주, 이용준, 이봉우, 허기호, 신찬정, 이양보, 주상옥, 이동규, 김석규, 손인영, 이진무 등 14명이 추가로 결의하였다(이유립,『대배달민족사』5권, 40쪽) 
 
1915년 10월 단학회 의 근거지를 만주로 옮기면서 관전현 홍서랍자구에 『배달의숙』 이라는 교육기관을 열어 청년 학도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독립운동 단체인 천마대, 서로군정서, 의민사, 벽파대, 기워독립단 등에 속한 단원들의 사상적 계몽 역할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 등 여러 항일독립운동가와 교류하면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19년 3월부터 기관지 <단학회보>를 간행하기 시작하여 제8호까지 발간하였다.
 
 운초 계연수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배달의숙은 초토화됐다. 일제는 배달의숙에 보관되어 있던 역사책, 교재, 문서 등 자료와 사료 등 3천여 점이 모두 불태웠다. 일제 헌병대에 끌려간 운초 계연수 선생1920년 8월 일본 제국주의의 밀정 감영극의 밀고로 일제에 의해 사지가 절단당한 채 압록강에 버려졌다.
 
*당시 밀정을 파견한 위순사감독 감연극(감영극 이라고도 전한다.)은 ‘조선 역사를 고취하는 놈은 일본의 대동방大東方 평화정책을 방해하는 것이니 모두 잡아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양종현, 『백년의 여정』,106p)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계연수의 토막 난 시신이 수습될 때, 그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14세 소년이 한암당 이유립이었다. 이유립 선생을 통해서 해방이후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계연수 선생 순국후 100년이 지나도록 해방후 70여년이 지나도록 역사광복은 이루어내지 못했다. 환단고기가 편찬되고 발행되어서 세상에 나왔어도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의 뿌리깊은 평폐를 청산하지 못했다. 100주년에 더욱 역사광복과 역사전쟁에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하는 이유이기도하다. 계연수 선생 뿐 아니라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이제는 천상에서 역사광복되기만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병란 뿐 아니라 식민사관 감염병도 함께 극복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출처 :
 <정신철학통편>(1920년)
 <해동인물지>(1969년)
『대배달민족사』 ,이유립 저
『백년의 여정』 ,양종현 저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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