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루가 부여의 임금일 때, 대신 아란불(阿蘭弗)의 꿈에 천제가 나타나서 “동해 바닷가에 가섭원(迦葉原)이란 곳이 있으니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라."라고 명해서 그곳으로 옮겼다.
<동부여 건국> 신화다. 신화로 보는 것은 천제가 나타났다는 표현때문일 것이다. 문헌을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이 기록속의 역사적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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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상생방송 |
『삼국유사』 북부여조
왕은 뒤에 상제(上帝)의 명령으로 도읍을 동부여로 옮겼다.
≪삼국유사≫ 북부여조에서는 북부여의 천제를 해모수라 하고 그 아들을 해부루(解扶婁)라고 한 뒤, 해부루가 상제(上帝)의 명을 따라 동부여로 옮겨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 동부여조
북부여의 왕인 해부루의 대신 아란불의 꿈에 천제(天帝)가 내려와서 말했다. “장차 내 자손을 시켜서 이곳에 나라를 세울 터이니 너는 다른 곳으로 피해 가도록 하라. 동해 가에 가섭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지니 왕도를 세울 만할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해부루는 북부여의 왕이었는데 가섭원으로 천도하여 동부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부루가 원래 있던 터에는 북부여의 계승자가 자리잡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이처럼 북부여와 동부여 두 개의 부여를 보여주고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국상 아란불이 말하기를, “일전에 천신(天神)이 나에게 강림하여 이르기를, 장차 나의 자손으로 이곳에 건국케 하려하니 너희는 다른 곳으로 피하라. 동해 가에 가섭원이란 곳이 있으니 토양이 기름지고 오곡에 알맞으니 도읍할 만하다 하였다”
『동국이상국집』권3, 고율시, 동명왕편
「본기(本紀)에 이르기를 부여왕(夫餘王) 해부루(解夫婁)가 금개구리 형상의 작은 아이를.....길러 금와(金蛙)라 하고 태자로 삼았다. 정승 아란불(阿蘭弗)이 말하기를 하루는 천제(天帝)가 제게 내려와서 장차 내 자손(子孫)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하니 너는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동해 가에 가섭원(迦葉源)이란 땅이 있는데 오곡이 잘 되니 도읍할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란불은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고 동부여(東夫餘)라 하였다. 옛 수도에는 해모수(解慕漱)가 천제의 아들이 되어 와서 도읍하였다.
동북이상국집에서는 옛 수도에 해모수가 와서 도읍하였다고 되어있다.
『제왕운기』『권하, 「동국군왕개국연대」 한사군급열국기
동명본기(東明本紀)』에 따르면"… 의 신하 아란불(阿蘭弗)이 말하기를 '하루는 하늘에서 저에게 내려와 장차 내 아들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자 하니 너는 이를 피하여 동해의 해변에 가섭원(迦葉源)이란 땅이 있으니 토양이 오곡에 마땅하여 가히 도읍을 삼을만 하다'라고 하였다. 왕에게 권하여 도읍을 옮기게 하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東夫餘)라고 하였다.."
역사적 사실로 풀어보면 의미가 나온다. 어디선가 천자를 칭하는 세력이 나타나서 땅을 내놓으라고 하는 압력을 받는 상황이다. 신하 아란불은 꿈 이야기를 하며 가섭원이라는 땅으로 천도를 해야한다는 것을 간언하고 해부루는 백성들을 이끌고 원래 살던 땅을 천자세력에게 내어주고 새로운 땅 가섭원으로 이주하게 된다.
여기에서 미스테리는 과연 해부루에게 압력을 가한 세력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보면 천제나 천신,상제 즉 하느님이라고 칭하는 세력이다. 천제가 나타나서 자신의 자손이 이 땅에 거주하고자 하다는 것은 천자를 칭하는 자와 그 세력이 나타난 것으로 보면 아주 적절하다.
아란불에게 나타난 존재(상제,천신,천제)의 정체는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푼 『환단고기』와 비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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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북부여기를 보자
『환단고기』 북부여기 상
재위 13년 계유년(BCE 108)에 한나라 유철(무제)이 평나에 침범하여 우거를 멸하더니 그곳에 4군을 설치하려고 군대를 크게 일으켜 사방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고두막한이 구국의 의병을 일으켜 이르는 곳마다 한나라 도적을 격파하였다. 이 때 유민이 사방에서 호응하여 전쟁을 지원하니 군세를 크게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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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34년 갑오(BCE 87)년 10월에 동명국 고두막한이 사람을 보내어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로다. 장차 여기에 도읍하고자 하나니, 임금은 이곳을 떠나도록 하시오” 하니, 임금께서 난감하여 괴로워하셨다. 이 달에 고우루단군께서 근심과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아우 해부루가 즉위하였다. 동명왕 고두막한이 군대를 보내어 계속 위협하므로 임금과 신하들이 몹시 난감하였다. 이때 국상 아란불이 주청하기를 “통하 물가에 가섭원이란 곳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져서 오곡이 자라기에 적합하니 가히 도읍할 만한 곳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께 권유하여 마침내 도읍을 옮기니, 이 나라를 가섭원부여, 혹은 동부여라 한다.
『환단고기』 북부여기 하
재위 23년 을미(BCE 86)년에 북부여가 성읍을 바쳐서 항복하고 왕실만은 보존시켜 주기를 여러 번 애원하였다. 고두막 단군께서 들어 주시어, 해부루의 봉작을 낮추어 제후로 삼아 차릉(가섭원, 지금의 만주 흑룡강성 통하현)으로 이주해 살게 하셨다. 임금께서 북 치고 나팔 부는 악대를 앞세우고 무리 수만명을 이끌고 도성에 입성하셨다. 나라 이름을 여전히 북부여라 칭하셨다.
<북부여기 하>를 보면 왕실만은 보존하여 달라고 애원하였다는 구절과 해부루의 봉작을 낮추었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런 부분이 당시의 상황을 드라마처럼 그려지고 있다.
東明國 高豆莫汗 使人來告 曰 '我是天帝子 將欲都之 王其避之' (북부여기 상)
고무막한이 "나는 천제지자다(我是天帝子)"라는 부분에서 천신,천제,상제,하느님이 보낼 것이라는 자손이 바로 고무막한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한나라가 위만정권을 치고 이후 북부여를 쳐들어온 위급한 상황에서 고두막한이 의병으로 나서서 나라를 구하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역사속에서 완전하게 삭제되어있다. 북부여를 살린 고두막한이 나와야 역사의 실타래가 풀리게 된다. 천제,천신,상제라는 이름으로 신화적으로 가리워졌던 천자 고무막한을 드러낸 환단고기의 진가가 여기에서도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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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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