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 힐링 이런 책, 저런 영화
[신간] 『숨겨진역사 보천교』잃어버린 역사, 잊혀진 역사일제강점기의 절망적 상황에서 한민족에게 개벽사상과 민족독립의 희망을 심어줬던 보천교 연구의 결정판!

숨겨진역사 보천교/ 상생출판/김철수 저/2020년 2월/ 416쪽

보천교를 아시나요? 보천교를 들어보신적은 있나요? 

천도교는 알아도 대종교는 들어봤어도 보천교를 아는 사람은 많이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철저히 속고 있거나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1925년 조선 주재 미국 총영사 밀러의 ‘조선보고서’와 1926년 조선총독부 ‘보천교 일반’ 자료에 따르면, 보천교 신도 수는 약 600만명이다. 총영사 밀러가 미국 본국에 보고한 내용에 600만명이 1920년대에 한국인들이 신앙한다고 적은 것이다. 당시 조선 인구가 약 1900만명임을 감안하면 일제강점시 대한의 백성들은 3명 중 1명은 보천교를 믿었던 것이다. 

쉽게 풀자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100년전에 살았던 조상님들은 보천교를 하거나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리는 왜 보천교 석자를 들어보지 못한 것인가?

<숨겨진역사 보천교>는 어쩌면 이 책을 접하는 독자의 뿌리일 수 있는 보천교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이제는 올바르고 온전한 역사를 드러내야할 때다. 

보천교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의 절망적 상황에서 우리 민족에게 숨쉴 여력을 제공해주고 민족독립의 희망을 심어줬던 민족종교이다. 나라를 잃고 좌절에 빠져 있던 당시 민중들의 자존감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우리 민족의 희망이었다. 

1920년대 들어, 보천교 교단은 인적·물적 수단의 확대로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히 확보되면서 실력양성운동에 참여하거나 해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민족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보천교는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하고 독립자금의 황금맥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보천교는 상해임시정부 자금 5만원(현 가치 20억원), 김규식·여운형의 모스크바 약소민족회의 참석 여비 1만원(2억원) 등을 지원했다. 재정책임자 김홍규는 임정에 군자금 30만원(120억원), 김좌진 장군에게 5만원 등을 지원했고, 보천교 간부였던 박자혜 여사(신채호 선생 부인)는 정의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는 가교역할을 맡았다. 

식민권력으로서는 타 종교에 비해 새로운 국가 건설을 기도하며 다수의 신도를 확보하고 군자금을 지원하는 등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던 보천교는 초기에 박멸하거나 어용화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외형적으로는 유화정책을 사용하면서 분열과 그 조직의 약체화를 꾀했다. 종교통제 기구도 이원화시켰다. 소위 종교단체는 학무국 종교과에서 담당했지만 유사종교로 분류된 보천교는 총독부 경무국에서 감독토록 하여 강력한 폭력성과 억압성을 띤 통제를 가하였다. (숨겨진 역사 보천교, 28p)

일제가 보천교와 천도교의 분포도를 그려놓고 감시했다. 이 지도를 보면 전국 방방곡곡에 보천교가 없는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와 울릉도에도 보천교는 있다. 우리는 무엇을 배운 것인가. 무엇을 알지 못하도록 강요당한 것인가.

식민권력은 1915년 「포교규칙」을 제정해 보천교를 '종교 유사단체' 곧 '유사종교'로 분류해 버렸다. 식민권력의 종교 통제정책은 성공했다. 식민지 상황에서 엄청난 교세를 확보했던 보천교는 1936년 차월곡의 사망과 함께 해체되어 버렸고, 해방 이후, 아니 현재 우리들의 기억 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식민권력이 생성해 놓은 부정적 이미지로 남아있을 뿐이다.

당시 보천교가 잘못한 죄라고는 일제강점기에 교단을 형성한 죄, 자칭·타칭 600만이라는 수많은 조선 민중과 함께 했던 죄, 그런 만큼 자금이 많았던 죄, 그리고 식민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죄밖에는 없는데도 말이다. (숨겨진 역사 보천교, 28p) 

 우리에게 보천교는 잃어버린 역사이고 잊혀진 역사다. 그리고  꼭 회복해야 할 역사이다. 보천교 이름 석자. 이제 마음에 담아두고 이 책도 일단 담아두자. 우리의 600만명 조상들의 이야기니 꺼내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100년전 치열했던 그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박지환  youcontents@naver.com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지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