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첫 방영하는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는, 평행세계에서 이 세계로 온. 차원의 문(門)을 닫으려는 이과(理科) 황제 이곤과 누군가의 삶,사람,사랑을 지키려는. 문과(文科) 형사 정태을의 공조가 때론 설레게 때론 시리게 펼쳐지는 차원 다른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라고 되어있다.
![]() |
| 드라마 <더킹, 영원한 군주>의 한 장면 |
드라마 속의 만파식적
드라마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대한제국이 배경이지만 가상의 황제들이다.
"선황제의 이복형이자 이곤의 큰아버지다. 태어나기는 첫째 아들이었으나 어미는 황후가 되지 못하고 죽어 귀인으로 추증되었다. 서자라는 이유로 열세 살이 되어서야 금친왕으로 봉해졌다. 이림은 억울했다. 적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황제가 된, 그저 선하기만 한 제 이복형제는 세상을 손에 쥐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쥐고 있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 ‘세상’이란 것도 몰랐다. 정확히는 두 개의 세상. 시간과 공을 들인 이림의 분노는 구체적인 계획이 되었고 어느 밤, 칼을 빼 들었다. 역모였다. 황제를 시해하고 만파식적을 손에 넣고 어린 조카의 목을 졸랐다. ‘욕망’은 결국 화를 불렀다. 만파식적이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드라마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대한제국이 배경이지만 가상의 황제들이다.
"선황제의 이복형이자 이곤의 큰아버지다. 태어나기는 첫째 아들이었으나 어미는 황후가 되지 못하고 죽어 귀인으로 추증되었다. 서자라는 이유로 열세 살이 되어서야 금친왕으로 봉해졌다. 이림은 억울했다. 적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황제가 된, 그저 선하기만 한 제 이복형제는 세상을 손에 쥐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쥐고 있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 ‘세상’이란 것도 몰랐다. 정확히는 두 개의 세상. 시간과 공을 들인 이림의 분노는 구체적인 계획이 되었고 어느 밤, 칼을 빼 들었다. 역모였다. 황제를 시해하고 만파식적을 손에 넣고 어린 조카의 목을 졸랐다. ‘욕망’은 결국 화를 불렀다. 만파식적이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쫓기던 걸음이 대숲에 다다랐을 때, 새로이 문이 열렸고 문을 넘어서자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림은 제 앞에 이 문을 열어둔 신(神)을 비웃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은 틀렸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 그는 인간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인생을 바꾸겠는가. 인간들은 욕망으로 눈빛이 변했다. 이림은 그 하찮은 인간들의 욕망을 꿰뚫고 그 욕망보다 거대한 존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곤의 손에 있는 만파식적의 다른 한 동강을 반드시 손에 넣어서, 두 세상의 신(神)이 되기로."
![]() |
| 드라마 <더킹, 영원한 군주>의 한 장면 |
그러면 실제 역사서 속에 나타난 만파식적 이야기는 무엇일까?
삼국유사를 통해서 본 만파식적
만파식적 이야기는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만파식적조와 『삼국사기』 권32 잡지 제1 악조(樂條)에 실려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제 2권 기이편 만파식적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만파식적 이야기는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만파식적조와 『삼국사기』 권32 잡지 제1 악조(樂條)에 실려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제 2권 기이편 만파식적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 제 31대 신문왕의 이름은 정명이요, 성은 김씨다. 개요 원년 신사 7월7일에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문무대왕을 위하여 동해변에 감은사란 절을 세웠다.
이듬해 임오 5월 초하루에 해관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었다. “동해 안에 작은 산이 있는데, 물결을 따라 감은사를 왕래합니다.” 왕이 이를 이상히 여겨 일관 김춘질에게 점을 쳐보라고 하니, 김춘질이 아뢰기를 “대왕의 아버님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시어 삼한을 보호하시고 또 김유신 공도 삼십삼(33)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인간으로 내려와 대신이 되었습니다. 이 두 성인이 덕을 함께 하여 성을 지킬 보물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만일 폐하께서 바닷가로 나가시면 반드시 값으로 치를 수 없는 큰 보물을 얻으실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왕은 기뻐하여 그 달 7일에 이현대로 가시어 그 산을 바라보고 사자를 보내어 살펴보도록 했다. 사자가 아뢰기를 “산 생긴 형세는 마치 거북의 머리처럼 생겼는데 산 위에 한 개의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합해져서 하나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감은사에 들려 밤을 지내고, 이튿날 오시(午時에) 동해변으로 향하였다. 이 때 대나무가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데 천지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7일 동안이나 어두운 날이 지속되었다. 그 달 16일에 이르러서야 바람이 자고 물결이 가라앉았다. 왕이 배를 타고 바다에 떠 그 산에 들어가니 용 한 마리가 검은 옥대를 받들어 바치었다.
왕은 용을 맞아 함께 앉아서 “이 산이 대나무와 함께 혹은 갈라지고 혹은 합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용이, “비유해 말씀드리면 한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란 물건은 합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오니, 성왕께서 이 소리로 천하를 다스리실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지고 피리를 만들어 부시면 온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대왕의 아버님께서는 바다 속의 큰 용이 되셨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셔서 두 성인이 마음을 같이 하여 이런 값을 치를 수 없는 큰 보물을 저에게 보내시어 저로 하여금 왕께 바치게 한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왕은 놀라고 기뻐하여 오색비단과 금과 옥을 주고는 사자를 시켜 대나무를 베어 가지고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때 산과 용이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 날 왕이 감은사에서 묵고 17일에는 기림사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 이공(효소왕)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타고 달려와서 자세히 살펴보고는, “이 옥대에 박은 모든 장식은 하나 하나가 다 산 용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왕이 “네가 어찌 아느냐.”고 하니, “눈금 하나를 떼어서 물에 넣어 그것을 보이겟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옥대의 왼편 둘째 장식을 떼어서 시냇물에 넣으니 그 장식이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이내 못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 못은 용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왕이 대궐로 돌아오자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천존고에 간직해 두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았고 가뭄 때는 비가 오고 장마 때는 날이 개며, 바람이 잠잠하고 물결은 평온해졌다.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효소왕 때인 천수 4년 계사(693년)에 부례랑이 살아서 돌아온 기이한 일로 인해서 다시 만만파파식적이라 이름했다."
![]() |
| 삼국사기』 권32 잡지 제1 악조(樂條)에 나오는 만파식적 |
만파식적 이야기는 《고기》 기록으로 삼국사기』 권32 잡지 제1 악조(樂條)에 간략하게 실려 있다.
古記云, “神女王校勘 030時, 東海中忽有一小山, 形如龜頭. 其上有一竿竹, 晝分為二, 夜合爲一. 王使斫之作笛, 名萬波息.” 雖有此說, 怪不可信.
삼국사기 정덕본에는 神女王으로 되어 있으나, 《삼국유사》 만파식적(萬波息笛)조에는 신문왕 때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 |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