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가 동쪽 오랑캐라는 뜻이라던데 우리 스스로 오랑캐라고 부르는 게 적절한지 고민이 필요할 듯 합니다."
"동이가 무슨 좋은 말인줄 아냐, 중국은 예로부터,,, 동어, 서융, 남만, 북적,,, 즉 동서남북 몽땅 다 오랑캐라 했다,,, 동이는 동쪽 오랑케라는 뜻이다."
"동이, 북적, 남융, 서만 전부 중국인들이 주변 민족을 비하해서 부르던 말인데
굳이 우리 입으로 동이라고 할까? 과연 동이는 어떤 뜻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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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상생출판 |
한민족을 다른 말로 동이족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 동이,동이족이라는 단어에 대한 말이 많다. 동이라는 말을 나쁜 뜻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과연 동이는 어떤 뜻이며 그 뜻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동이는 오랑캐란 뜻이 아니다. 이는 후대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높이고 주변을 낮추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개념일 뿐이다.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동이를 오랑캐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뛰어난 문명을 가진 사람들로 생각했다.
사실 동東이란 글자는 태양이 떠오르는 광명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동방은 생명·탄생·시작을 의미한다. 광명사상은 동방 한민족 사상의 원형이며, 동방의 뿌리시대에 건립된 국가도 광명사상을 배경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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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zdic.net |
중국 후한 때의 경학자요 문자학자인 허신許愼이 편찬한 중국 최초의 종합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이夷 자에 대해 “동방지인야東方之人也. 종대종궁從大從弓”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이’는 ‘큰 활을 쏘는 동쪽 사람’이란 뜻이다. ‘이夷’ 자는 또한 ‘신을 대신하는 사람’과 ‘어진 사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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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zdic.net |
은나라 갑골문에서 이夷는 시尸, 인人과 똑같이 ‘사람이 똑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시尸는 제사 때 신이 응감하도록 세워놓은 신상으로 ‘신의 대리인’을 뜻한다. 이렇게 ‘이夷’ 자를 ‘신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것은 당시 동이족이 신성한 종족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준다. ‘이夷’ 자를 어진 사람으로 해석한 것은 “이夷는 뿌리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라고 한 『후한서』「동이열전」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인의 눈에 비춰진 동이족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사는 어진 민족이었다.
어쩌다 ‘동쪽 오랑캐’라는 못된 말꼬리가 붙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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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서석지四書釋地』라는 책에는 “3대 이후에는 화華와 이夷가 정해진 구분이 있지만 삼대 이상에는 화와 이가 정해진 구분이 없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여기서 3대는 하·은·주 시대를 말한다. 즉 중화와 동이를 구분하여 존화양이를 내세운 것은 후기의 일이며 본래는 중국에 화와 이의 구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서주西周 세력이 이족을 몰아내고 중국의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화이개념을 만들어내 춘추시대 공자에 의해 그것이 본격화된 것이며 본래는 고정된 화나 고정된 이가 따로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동이’가 변방의 오랑캐로 폄하된 것은 중국의 의도적인 공작임을 알 수 있다. 동이는 원래 국한된 한 지역이 아니라 전 중국에 걸쳐 사방에 골고루 분포되어 살았는데 나중에 화하華夏족이 중국의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동방에 사는 이夷를 동이東夷, 서방에 사는 이夷를 서융西戎, 남방에 사는 이夷를 남만南蠻, 북방에 사는 이夷를 북적北狄이라 폄하하여 부르게 되었다. 특히 한무제 때 사마천이 중국 최초의 정사인 『사기』를 저술하면서 동이족 역사의 뿌리부터 왜곡하였다.
동이의 진면목을 찾아내어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은 역시 동이에 속해 있는 만주족의 청나라였다. 청나라는 중국을 통치한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데다가 동이의 일원인 만주족이 다스리는 국가이다 보니 중국인의 해묵은 동이관에 대해 각종 문헌을 통해 객관적 입장에서 면밀히 되돌아볼 수 있었다. 청나라는 스스로를 동이라고 당당하게 내세우고 주장하였다. 청나라는 한족의 거센 반청사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사고전서四庫全書’라는 대규모의 국가적 편찬사업을 추진, 완성하였다.
이 ‘사고전서’의 동이 기사를 보면 중국의 동이관에는 대내용 동이 문헌과 대외용 동이 문헌이 있으며 이에 따라 두 종류의 동이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고전서’의 동이 기사에 따르면 중국의 친화적 대외용 동이관이 있었는데도 배타적인 대내용 동이관이 현재 우리 사회에 깊숙이 박혀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우리 선인들이 중국 동이관의 이중성을 알지 못하고 공자의 춘추관, 즉 배타적인 동이관에 안주하여 ‘소중화의식’에 사로잡힌 데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발췌 정리 :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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