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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사기] 진나라 중원 통일의 원동력이 된 전투는?


이 내용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블로그의 신주사기 연재 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장평지전(長平之戰)은 서기전 262년~서기전 260년에 진나라 60만 대군과 조나라 45만 대군이 맞붙어 조나라 45만 군사가 전원 전사한 전쟁으로, 전국시대 끝자락에 벌어진 최대 전투로 불립니다. 조나라 포로 45만 군사가 모두 참수당한 채 땅에 묻혔을 정도로 잔혹한 전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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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를 승리로 이끈 백전노장 백기(白起)는 조나라 포로들을 먹일 군량이 없었습니다. 결국 백기는 조나라 군사들을 파묻어버리는 결단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이런 백기의 잔혹함은 다른 나라들에 강력한 경고가 되었습니다. 진나라에 섣불리 대항하는 자의 결말은 잔혹함이 뒤따를 것이라는 엄포였습니다. 또한 전투에서 진 결과, 농사 지을 남자들이 거의 없어져버린 조나라는 그로부터 약 30년 후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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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지전에 대해 <사기> 진본기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출처; 《신주사기》4권 <진본기>

《신주사기》를 집필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진은 장평지전을 훗날 진시황이 중원 통일을 이룬 원동력이었다고 풀이합니다. 

이것이 전국시대의 명운을 가른 전투 중의 하나인 장평지전長平之戰이다. 장평은 지금의 산서성 진성晉城시 산하의 고평高平시로 비정한다. 서기전 262년~서기전 260년 사이에 벌어진 진국秦國과 조국趙國의 전쟁으로서 진국의 장수는 백기白起와 왕흘王齕이었고 조국의 장수는 염파廉頗와 조괄趙括이었다. 진군은 약 60만, 조군은 약 45만이었는데 두 나라는 같은 영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생결단하고 싸웠다. 진군은 약 20만 명이 전사한 반면 조군은 45만 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이 대전의 결과 조나라가 약화되면서 전국시대의 저울추가 진나라로 기울었고, 40여 년 후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하게 되었다.

진나라는 중원을 최초로 통일한 국가입니다. 실로 현 중국의 모체는 진의 중원통일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진시황의 중원통일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중국 역사상 최대 사건입니다. 진시황이 갑자기 나타나 중원을 통일한 게 아니라 장평지전이라는 전투가 있었기에 진시황의 중원통일도 가능했던 게 아닐까요?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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