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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 역사는 유교 이전 단군시대에서 찾아야단군왕검의 효사상 강조...효도의 대명사 소련과 대련은 단군조선 사람

"효의 사상과 예는 한민족에게서 처음 시작되다"   

 

 

효의 역사는 유교 이전 단군시대에서 찾아야

효의 역사는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자식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사랑과 공경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그렇게 믿고도 싶을 것이다. 다만 정말 효에 관한 문헌과 효를 행한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효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단군왕검의 강령 “오직 부모를 잘 공경하라”

<단군세기>에는 초대 단군왕검의 8대 강령이 있는데 여기에 3조가 바로 효에 관한 내용이다.

爾生惟親 親降自天 惟敬爾親 乃克敬天 以及于邦國 是乃忠孝 爾克体是道 天有崩 必先脫免

너를 낳으신 분은 부모요 부모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으니 오직 너희 부모를 잘 공경하여야 능히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느니라. 이러한 정신이 온 나라에 퍼져나가면 충효가 되나니 너희가 도를 몸으로 잘 익히면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먼저 벗어나 살 수 있으리라.

 

효도의 대명사 소련과 대련

보통 우리가 유교에서 유래했다고 알고 있는 삼년상은 진짜로 중국에서 시작한 것일까? 사실 삼년상의 진짜 유래는 바로 단군조선때부터 시작된 것다. 단군조선때 사람이었던 소련과 대련이 처음으로 한 것이 삼년상이다.

 

<중국문헌> 효의 표상 소련, 대련은 동이의 아들

<예기>의 잡기 하편에, 소련과 대련은 상을 잘 치루었다(少連大連善居喪)하고 주해를 달기를, 삼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석달을 느슨하지 않았고 한해가 지날 때 슬퍼하고 애통해 했으며, 삼년을 슬픔에 젖어 있었는데 동이의 아들이다(三日不怠 三月不懈 朞年悲哀 三年憂 東夷之子也)라고 적고 있다.

《禮記·雜記下》: 少連、大連善居喪,三日不怠,三月不解,期悲哀,三年憂。東夷之子也。

《孔子家語·子貢問》: 少連大連善居喪,其有異稱乎?」孔子曰:「父母之喪,三日不怠,三月不解,期悲哀,三年憂,東夷之子 達於禮者也

《太平御覽·居喪》: 少連、大連善居喪,三日不怠,三月不懈。其悲哀,三年憂,東夷之子也。

예기(禮記)는 하은주(夏殷周) 3대에 걸쳐 행해지던 예법(禮法)을 정리한 기록인데, 고대중국이 예(禮)와 도(道)를 잃었을 때 그 예와 도를 사이(四夷)에서 구하였다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볼 때, 하은주의 예법은 곧 단군조선의 예법을 본딴 것이 된다.

중국고전상에는 정확한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 못하고 단지 효의 대표 또는 상징으로 취급하고 있다. 단군세기의 내용을 보면 소련대련은 공자보다 약 1700년 앞선 인물들이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소련,대련은 초기 단군조선 사람

단군조선 2대 부루단군 재위2년 임인 2년(서기전 2239년)에 임금께서 소련과 대련을 불러서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에 대해서 물으셨다, 이에앞서 소련과 대련은 거상을 잘 치루었으니(少連大連善居喪) 처음 3일을 태만하지 않았고 3개월동안 게으르지 않았고 한해가 다 지나도록 슬퍼하였으며 3년간 근심으로 지냈다. 三日不怠 三月不懈 朞年悲哀 三年憂自是擧俗 이로부터 세상의 풍속이 부모상을 당하면 소련과 대련을 본받아 다섯달 동안 정상을 하였는데 오래도록 상을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천하의 대성인이 아니었다면 어찌 덕화가 널리 퍼짐이 이토록 역말로 전하는 것처럼 빠를 수 있었겟는가? 소련과 대련은 효자로 알려지고 공자 또한 이들을 칭송하였다. 무릇 효란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근본이니(孝者愛人盖世之本) 온 세상에 이를 널리 펴서 표준으로 삼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3년상은 유교나 중국에서 처음 시작한 게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인 단군조선 사람인 소련과 대련이 먼저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삼년상이 사실은 우리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전 소재 효문화진흥원 1층,  '머리로 이해하는 효이해실'  유교의 효가 강조되어 있다.

삼년상 풍속이 시작되다

삼년상은 소련과 대련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으로는 그 후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삼한관경본기의 번한세가 하편에서는 "39세 번한 왕 등나(기원전 1012년 즉위)께서 이극회가 삼년상을 정하여 실시할 것을 청하므로 이를 따랐다"라고 한 구절이 있다. 이로 보면 삼년상은 근 3천년 동안 행해진 우리나라의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가 왜곡되어 알려지다보니 3년상이 유교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대전 소재 효문화진흥원 1층,  '머리로 이해하는 효이해실'

이상과 같이 단군조선 시대부터 효에 관한 기록과 효를 행한 성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다. 효는 공자와 유교의 덕목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편견은 이제는 던져버려야 한다. 효의 기본 사상과 예는 한민족에게서 처음 시작되었다.   

효의 역사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현대인이 행해야 할 효는 어떠해야할지 모색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낟.  효가 전 인류가 알고 실천해야 할 사상과 윤리로써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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