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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이 살았던 한나라의 시각으로 볼 때 항우는 반역자였습니다. 그래서 반고는 《한서》에서 항우를 본기는 커녕 일종의 반란자들의 사적인 〈진승 항적열전〉에 수록했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항우를 한고조 유방보다 앞서 본기에 수록했습니다.
사마천은 <항우본기>를 제 7권, 고조본기를 제8권으로 편찬했습니다. 중원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한 고조 유방보다 항우를 앞에 내세운 것입니다. 참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마천이 항우를 크게 높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마천은 "태사공은 말한다"라는 사평(史評)에서 항우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해하전투(垓下戰鬪)에서 열세에 몰리자, 항우가 기병들에게 했던 말 때문이었습니다. 사면초가에 놓인 항우는 기병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군사를 일으킨 지 지금까지 8년이었다. 몸소 70여 차례 전투에 싸웠는데 대적하는 자는 쳐부수고 공격하는 자들은 복속시켜 일찍이 패배를 모르고 마침내 천하의 패왕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졸지에 여기에서 곤궁하게 되었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
사마천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니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라는 마지막 대목을 비판했습니다. 사마천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자신의 공만을 자랑하고 그 사사로운 지혜만을 떨치면서 옛날 일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패왕의 사업만을 말하면서 힘으로 천하를 정벌해서 경영하려다가 5년 만에 마침내 그의 국가마저 망쳐버렸다. 자신도 동성東城에서 죽으면서도 오히려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책망하지도 않은 것이 그의 과오이다. 이에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군사를 잘못 움직인 죄가 아니다’라고 끌어댔으니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천명이 아니라 항우 자신의 잘못 때문에 패했다는 것입니다. 사마천은 천명 자체는 거부하지 않았지만 그 천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 행위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시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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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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