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의 편저자 계연수는 1920년 조선독립군으로 위장한 밀정 감영극의 덫에 걸려 무참히 살해되었다. 일제는 그의 사지를 절단하여 압록강에 버리고 배달의숙 건물에 불을 질러 계연수가 소장하던 서적과 원고들을 모두 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계연수 선생이 돌아가실때 옆에서 지켜본 어린 청소년이 환단고기를 세상에 알린 이유립 선생이다. 선생은 1949년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대전의 은행동에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이유립 선생은 대전시 중구 은행동 107번지에 위치한 5평 남짓한 적산가옥 224호에서 1963년부터 1976년까지 13년간 거주했다. 그의 호 한암당처럼 춥고 어둡고 배고픈 삶을 살았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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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립 선생이 살았던 자택의 현재 모습 (2017년 8월) |
현재까지 이곳은 재개발이 되지 않아 당시의 판자집 그대로다. 거기서 가르침을 받은 학생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양종현 선생과 그의 친구 등 몇 명이 있다.
현재 단단학회 회장인 양종현은 1967년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유립을 약 20년간 모시면서 역사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환단고기』 초간본을 좁은 방에서 스승과 무릎을 1맞대고 앉아 글자 하나하나 짚어가며 배운 기억을 생생하게 전하며 결코 위작이 아니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가 10년이 넘은 세월동안 후학을 가르쳤던 거주지가 재개발이 되어서 형태조차 사라지기 전에 기념비와 기념사업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대전은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와 더불어서 단재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유립 선생이 살던 지역이다. 대전시는 이런 한국사를 빛낸 큰 인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원하는데 미진한 모습이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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