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학박사이며 한배달부회장 그리고 한국땅이름학회명예회장을 맡고있는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의 『홍사한은鴻史桓殷』을 통해 만나보는 칼럼, "반재원의 『단군을 만나다』 "의 2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학교의 역사시간에 단군조선의 도읍지를 평양으로 배웠다. 그 근거의 하나가 단군릉이 평양에 있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단군세기』에 의하면 평양의 단군릉은 평양에 순수巡狩 왔다가 병이 나서 죽은 5세 단군 구을의 능이다. 북한의 평양이 도읍지였다면 나머지 46명의 단군들은 모두 평양 어디에 묻혔다는 말인가! 이것 또한 일본식민사관의 영향이지만 지금도 이 주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삼성기전 상편』 에 “신인 왕검께서 불함산不咸山의 박달나무터에 내려오셨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나오는 불함산은 안달산, 안다산, 완달산으로 그 음이 모두 같다. ‘안달의 ‘달’은 땅이라는 뜻이다. ‘응달’ ‘양달’은 음지와 양지의 우리말이다. 하늘의 ‘달’도 ‘응달’ ‘양달’의 ‘달’에서 온 말이다. 그믐달은 응달이고 보름달은 양달이다. 우리민족은 이미 하늘의 달을 땅으로 보았다.
불함산은 이두로 ‘아니불(不)’의 ‘안’과 ‘다함(咸)’의 ‘다’를 딴 ‘안다산 ’이 ‘안달’ ‘앗달 ‘아사달’이 된것이다. 즉, 지금의 하얼빈 뒷산인 완달산完達山이다. 또 『삼국유사』에 “아사달을 방홀산方忽山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는데 하얼빈에서는 지금도 완달산을 모을산帽兒山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모을산이 바로 방홀산에 다름 아니다. ‘방홀方忽’의 ‘모방(方)’에서 ‘모’를 취하고, 홀은 ‘흘’ ‘을’이 되어 모을산帽兒山이 된 것인데 ‘모방方’의 ‘모’가 나중에 ‘모자모帽’로 변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가서 보아도 아사달산의 꼭대기가 모을帽兒 즉 아이의 모자처럼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아있다. 우리농악의 고깔모자도 우리 조상의 옛 고향인 아사달산을 본뜬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모을산’은 사기에 나오는 ‘방홀산’의 다른 표기로 보는 것이다. 또 궁홀산, 궁흘산이라고도 한다고 하였는데 궁홀산도 이두로 풀면 ‘활궁’의 ‘활’과 ‘홀’이 합하여 ‘활홀’ ‘화을’ ‘하얼’이 되어 하얼빈이 된다. 구월산도 이두로 아홉구, 달월 즉 ‘아홉달’ ‘압달’ ‘앗달’ ‘아사달산’이 된다. 그래서 『제왕운기』에 “아사달산은 구월산이며 일명 궁홀산이며 또 삼위산 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구월과 아사달의 유사함에서 생긴 착오이다. 다시 말해서 구월이 아사달로 변하는 바람에 궁홀산, 삼위산으로 같이 따라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아사달의 음이 여러 한자로 표기되면서 후대의 연구가들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하얼빈이라는 지명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에 만주족이 지은 것이며 그 뜻은 ‘그물을 널어 말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신채호도 아사달을 송화강변 완달산이 있는 하얼빈이라고 하였고 추사 김정희도 합이빈哈爾濱 완달산完達山을 아사달산阿斯達山이라고 하였다. 또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하니 지금의 송화강가이다”라고 하얼빈 송화강을 명시하고 있다. 또 하얼빈이라는 땅 이름은 할빈, 홀빈, 홀본, 졸본卒本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졸본은 태양을 호위하는 금성을 의미하는데 지금도 하얼빈 송화강에는 태양도太陽島라는 섬이 있기 때문이다. 태양을 호위하는 금성이 바로 졸본卒本이며 할빈이다.
모계사회였던 상고시대에는 딸이 아닌 사위가 대를 이었다. 그때의 ‘자子’는 지금의 아들이 아니라 사위를 뜻하는 글자였다. 천자天子나 국자國子의 자子도 대를 이어 천자의 자리에 오를 나라의 사위라는 의미이다. 나중에 부계사회로 바뀌었지만 말은 그대로 남아 왕자王子나 세자世子라는 말로 남아있다. 자子가 사위라는 증거가 아직도 남아있으니 한세대 전만 하더라도 족보 책에 출가한 딸 대신에 사위의 이름을 기록했으며 이때 사위의 이름 앞에 자子라고 표시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자子를 아들로 번역하다보니 모계사회의 역사 구분이 모호해져 버렸다. 왕검 때에도 모계사회였다. 왕검이 처가인 비서갑 송화강 지역에 있는 하얼빈의 웅씨 나라를 사위(子)로서 대를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해 보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웅씨(모계사회이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은 웅성熊姓임)왕이 왕검의 비범하다는 소문을 듣고 비왕(후계자)으로 삼았다’라는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자신의 아들에게 하는 말투가 아니다. 금문학상으로도 단군조선 초기는 순임금 시기처럼 모계사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검이 사위로서 하얼빈에 있던 처가 나라의 왕위를 물려받아 국호를 조선이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완달산 비서갑이 지금의 하얼빈이라는 지명 유래를 보더라도 왕검의 첫 도읍지인 아사달이 하얼빈임에 틀림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몇 년 전, 구체구를 가는 도중에 여행 안내자가 길가에 서있는 우왕의 동상을 가리키면서 중국 치수治水의 신이라고 설명하였다. 우왕이 누구인가? 순임금의 사위로 동이족의 조상이며 우리의 조상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눈뜬장님이 되어 그저 그런가하고 지나친다. 길림성 사평지구는 요임금의 5만 군대와 왕검의 아버지가 싸울 때 왕검의 어머니 교웅과 왕검의 누이인 공주가 나아가 후원하면서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공주령이 되었다. 지금의 길림성 공주령시이다. 이때 왕검은 요하를 건너 대고산으로 들어가니 이곳을 태자하라고 칭하게 되었다. 공주령역 광장에 하늘을 날듯이 서있는 공주의 동상이 바로 왕검 단군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그 누가 알겠는가! 조선족 여행 안내자는 이루지 못한 어느 공주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전설로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직 우리 상고사는 귓등으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귀머거리요, 애써 보려고도 하지않는 눈뜬장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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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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