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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명소] 동춘당공원과 동춘당

동춘당 공원은 대전 대덕구에서는 유명한 공원이다. 조선후기 문인 송준길의 호를 따서 만들어진 별당을 중심으로 한 곳이다.  이 별당은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건축물로 보물 제209호다. 

대전 대덕구 송촌동에 위치한 동춘당

동춘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 모양의 평면으로 된 단층팔작지붕이며, 앞면을 널찍하게 다듬은 돌로 쌓은 단층기단 위에, 다듬은 돌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주두 없이 직접 굴도리를 받친, 민도리집 양식이다.

동춘당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1606년에 태어나 내시교관, 형조 좌랑, 한성부 판관, 사헌부집의,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 판서울 역임하고 1672년에 사망했다. 송준길의 묘는 대덕구가 아닌  서구(원정도 산 60-2)에 있다 어릴 때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의 제자가 되어 한 살 연하인 우암 송시열과 더불어 서인 세력을 규합했던 서인의 중심에서 세상을 외쳤다. 

동춘당(同春堂).  ‘세상 만물과 더불어 봄을 함께 한다’는 뜻의 ‘동춘당’이라는 호는 그가 48세 되던 1653년에 대전 회덕(현재 대덕)에 중건한 별당(別堂)의 이름이 되었다.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대전 대덕구 송촌동에 위치한 동춘당

양송(兩宋)으로 불리운 송준길,송시열
송시열은 회덕(懷德)의 송촌(宋村)·비래동(飛來洞)·소제(蘇堤) 등지로 옮겨가며 살았으므로 세칭 회덕인(현 대전 대덕구)으로도 알려져 있다. 8세 때부터 친척인 송준길의 집에서 함께 공부하게 되어, 훗날 양송(兩宋)으로 불리는 특별한 교분을 맺게 되었다

이렇듯 송준길은 송시열과 같은 종친이면서 학문 경향도 같이한 성리학자로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일찍이 김장생이 예학의 종장(宗匠)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저서로 『어록해(語錄解)』·『동춘당집(同春堂集)』이 있으며, 글씨로는 부산의 충렬사비문(忠烈祠碑文), 남양의 윤계순절비문(尹啓殉節碑文)이 있다.

송준길 “안시성주는 양만춘입니다”
『동춘당집(同春堂集)』에서 자주 인용되는 내용은 안시성주 양만춘에 관한 기록이다.  『동춘당선생별집』「경연일기」의 조선 18대 현종 10년인 1699년 4월 26일조에 양만춘 장군의 이름이 보인다.
"현종이 안시성주의 이름이 누구냐고 묻자, 송준길이 답하기를 양만춘(梁萬春)이며, 이세민의 군대를 맞이해 능히 막아냈으며, 성을 잘 방어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현종이 그것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고 묻자, 송준길이 답하기를 옛날 부원군 윤근수(1537~1616)가 중국에서 기록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梁萬春)이라는 부분에 대해 현종의 하문에 답하는 내용이다. 이런 부분에서의 관심이 『동춘당선생별집』의 전체 내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동춘당공원은 지역민의 안식처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곳을 활용한 행사들이 가끔 있어서 어느정도 활용은 되는 편이다. 동춘당에 대한 내용은 미리 알아가면 도움이되며 현장에 가서 자세한 설명을 듣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대전 대덕구 송촌동에 위치한 동춘당 전경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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