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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사기] 홍문지연(鴻門之宴)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뒤바꾼 죽음의 연회
출처 : https://kknews.cc/history/gpklyl.html

홍문지연(鴻門之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우가 함곡관을 돌파한 후 홍문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패상에 진을 친 유방이 찾아와서 사죄하자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때 항우의 책사 범증(范增)이 유방을 죽일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항우에게 죽이라고 하였으나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항장(項莊:항우의 종제)을 불러 검무를 추면서 죽이려고 했으나 항백(項伯:항우의 막내 숙부)도 같이 검무를 추면서 유방을 보호하는 터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유방은 번쾌(樊噲)가 장막으로 들어와 보호하는 틈을 타 측간을 간다고 하면서 패상으로 달려 도망쳐 살아 나올 수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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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사에서 나온 홍문지연이라는 말은 겉과 속이 서로 다른 상황이나 살벌한 정치적 담판을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 실린 홍문지연과 관련한 이야기를 직접 살펴봅시다. 

패공이 아침 일찍 100여 명의 기병과 나아가서 항왕을 만나러 왔다. 홍문鴻門에 이르러 항왕에게 사과하면서 말했다.
“신이 장군과 함께 힘을 다해 진나라를 공격했는데, 장군께서는 하북河北에서 싸웠고 신臣은 하남河南에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제 뜻과는 다르게 먼저 관關으로 들어가 진秦나라를 쳐부수고 이곳에서 다시 장군을 뵙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소인배들의 이간이 있어 장군과 신으로 하여금 틈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항왕이 말했다. “이것은 패공의 좌사마左司馬 조무상曹無傷의 말이오. 그렇지 않 았다면 내가 어찌 이렇게 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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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왕이 곧 그날로 패공을 머무르게 하고 함께 술을 마셨다. 항왕과 항백은 동쪽을 향해 앉았고 아보亞父는 남쪽을 향해 앉았다. 아보는 범증范增이다. 패공은 북쪽을 향해 앉았고 장량은 서쪽을 향해 앉았다. 범증이 자주 항왕에게 눈짓을 하며 차고 있는 옥결玉玦을 풀어서 세 번이나 보였는데도 항왕이 묵연히 응대하지 않았다. 범증이 일어나 나가서 항장項莊을 불러서 일러 말했다.

“군왕께서는 사람됨이 차마 하지 못하시니 들어가서 앞으로 나아가 축수祝壽를 하고 축수가 끝나면 검무劍舞를 추겠다고 청하라. 그래서 패공을 앉은 자리에서 공격해 죽여라. 죽이지 못하면 그대의 족속들은 모두 패공의 포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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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장項莊이 들어와서 축수를 했다. 축수가 끝나자 말했다. “군왕君王과 패공께서 함께해 술을 마시는데 군중軍中이라 음악으로 삼을 것이 없으니 청컨대 검무를 추겠습니다.”
항왕이 말했다. “그렇게 하라.”
항장이 검을 뽑고 일어나 춤을 추자 항백도 검을 뽑고 일어나 춤을 추면서 항상 몸으로 패공을 가리고 감싸니 항장이 공격할 틈을 얻지 못했다. 이에 장량이 군문軍門에 이르러 번쾌樊噲를 보았다.
번쾌가 말했다. “오늘의 일이 어떠합니까?”
장량이 대답했다. “매우 급하오. 지금 항장이 칼을 뽑아 검무를 추는데 그의 뜻은 늘 패공에게 있소.”
번쾌가 말했다. “이것은 급박한 일입니다. 신이 청컨대 들어가서 운명을 함께하겠습니다.”
​번쾌는 즉시 검을 차고 방패를 들고 군문으로 들어갔다. 창을 서로 엇대어 잡고 있는 무사들이 막아서 들어가지 못하자 번쾌는 그 방패로 곁으로 밀쳐 버렸다. 위사衛士들이 땅에 넘어지자 번쾌는 드디어 들어가 장막을 젖히고 서쪽을 향해 서서 눈을 부릅뜨고 항왕을 노려보았다. 이때 번쾌의 머리털은 위로 곤두서고 눈초리는 다 찢어져 있었다. 

항왕이 검을 어루만지며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말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자인가?”
장량이 말했다. “패공의 참승參乘 번쾌라는 자입니다.”
항왕이 말했다. “장사壯士로다. 한 잔 술을 내려라.”
곧 한 말의 잔에 술을 주었다. 번쾌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고 일어나 서서 단숨에 마셨다.
항왕이 말했다. “돼지의 어깻죽지를 주어라.”
곧 익히지 않은 돼지 어깻죽지 하나를 주었다. 번쾌는 그 방패를 땅에 엎어놓고 나서 돼지의 어깨 고기를 그 위에 올려놓고는 칼을 빼어 잘라서 씹어 먹었다.
항왕이 말했다. “장사로다. 다시 한 잔 마시겠느냐?”
번쾌가 말했다. “신臣은 장차 죽음도 피하지 않는데 한 잔 술을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대저 진왕秦王은 호랑이나 이리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서 살인을 온통 행할 수 없을 만큼 했고 형벌을 이루 다 주지 못할까 두려워하듯이 해서 천하가 모두 배반했습니다. 회왕懷王께서 여러 장수들과 약속하시기를, ‘먼저 진나라를 쳐부수고 함양에 들어간 자를 왕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패공께서 먼저 진나라를 쳐부수고 함양에 들어갔는데 털끝만큼의 재물도 감히 가까이하지 않고, 궁실을 닫아 봉하고 돌아와 패상에 주둔하면서 대왕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장군을 보내서 관문을 지키면서 도적이 들락거리는 것이나 비상사태를 대비했습니다. 수고롭게 애써서 공적이 이와 같이 높은데 후侯에 봉하는 상賞은 있지 않고 소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공이 있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십니까? 이는 망한 진나라를 잇는 것일뿐이니 가만히 생각해봐도 대왕이 취할 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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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왕이 응답하지 않다가 앉으라고 했다. 번쾌는 장량을 따라 앉았다. 앉은 지 얼마 뒤 패공이 일어나 측간에 가면서 번쾌를 불러 나갔다. 패공이 나가자 항왕이 도위都尉 진평陳平을 시켜 패공을 불러오게 했다. 

패공이 말했다.“지금 나오면서 하직인사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해야 하겠는가?”
번쾌가 말했다. “큰일을 할 때는 작은 언행은 돌아보지 않는 것이고, 큰 예절을 행할 때는 작은 꾸지람에 사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저 사람들은 막 칼과 도마가 되고, 우리는 어육魚肉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무슨 인사말을 하시렵니까?”

글만 읽어도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결과적으로 유방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했고, 결국 중국의 통일 왕조, 전한의 초대 황제가 됩니다. 홍문연에서 항우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면 유방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중국역사도 바뀌었겠죠.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뒤바꿔 놓은 흥미로운 일화입니다. 


이 내용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블로그에도 연재되어있습니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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