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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사기] 진시황을 시해하려다 실패한 '창해역사'가 강릉 출신?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29년, 시황제가 동쪽으로 순수巡狩했다. 양무陽武의 박랑사博狼沙 안에 이르렀을 때 도둑들 때문에 몹시 놀랐다. 도둑들을 잡지 못하자 천하에 영을 내려 10일 동안 크게 수색했다.

이는 박랑사에서 장량張良에게 사주받은 자객에게 저격을 당한 사건을 표현한 것입니다. 진시황을 노린 겁 없는 이 자객은 누구였을까요? 《사기》 <유후세가>, 《통감절요》 등에 따르면, 한나라 사람 장량이 한나라가 망하자 한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기 위해 창해역사滄海 力士에게 철추를 주어 박랑사 안에서 시황을 저격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철추를 잘못 던져 부차副車만 부서졌다는 내용입니다.

출처 : www.weibo.com/ttarticle/p/show?id=2309404474503362118234

장량이 진시황 시해를 맡긴 인물이라면, 창해역사는 굉장히 강한 인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창해역사가 우리나라 강릉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말일까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강원도에는 창해역사 설화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창해역사 설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강릉 남대천에서 떠내려가고 있는 큰 두레박을 발견합니다. 그 사람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두레박을 건져다가 얼여봤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얼굴이 검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창해역사라는 것입니다.

창해역사는 힘이 장사였습니다. 그런데 장자방이 진시황을 제거하기 위해 힘 센 장사를 찾아다니던 중 강릉에 이르러 창해역사를 만났습니다. 장자방은 그에게 진시황을 없애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를 수락한 창해역사는 천 근짜리 철퇴를 들고 진시황이 행차하는 길목에 숨어 있었습니다. 진시황 행렬이 지나가자 가장 화려한 수레를 공격했습니다. 거기에 진시황이 타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시황은 다른 수레에 타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진시황을 죽이는 데 실패한 창해역사는 즉시 모래밭을 뚫고 삼 십 리를 달아나 사라졌다고 합니다. 또는 열흘 동안 붙잡히지 않았는데 결국 잡혔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창해역사 유허비 출처 : ingress-intel.com/portal/창해역사-유허비/

창해역사의 성씨는 여씨 혹은 박씨로 나타납니다. 그의 얼굴이 검게 보이기 때문에 ‘검을 여(黎)’가 성씨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아산시에서 채록된 자료에는 강원도 박가의 아들 삼 형제 중 맏이라고 하여 박씨임을 주장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처럼 설화에서는 창해역사를 우리나라 인물로 설정하고 고향과 성씨를 구체화했습니다. 이같은 설화가 형성된 이유는 ‘창해(滄海)’라는 말이 본래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인 데다 창해역사의 신원이 역사기록에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폭군이었던 진시황을 공격했다는 통쾌한 역사 속 인물은 사람들의 공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창해역사를 우리나라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민족의 긍지를 살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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