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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수메르 문화 -

서양문명의 기원, 수메르문화

머리 뒷부분이 평평하고 머리카락은 검은 인종

 

환단고기에 의하면 기원전 5천년 경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수메르 문화다. 그리스 로마문명의 원류이기 때문에 서양학자들도 수메르를 서양문명의 기원이라고 한다.

 수메르는 어디서 왔을까? 수메르 창세신화에 의하면 수메르인은 머리뒷부분이 평평하고 머리카락은 검은 인종이라고 했다. 또한 수메르 점토판 기록에는 수메르인은 안샨(지금의 천산)을 넘어왔다고 한다. 안샨은 환국문명의 중심인 천산을 가리킨다. 
 
 수메르연구의 대가인 크레이머(N Kramer)박사는 ‘수메르인들은 동방에서 왔다’고 했다. 그가 말한 동방은 수메르인의 고향인 환국이다. 수메르문명의 특징을 보면 기원전 3500년경 도시국가로 성숙한 고대문명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다신교로 수많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후, 3200년 경 문자도 사용하였으며 상형문자에서 쐐기문자로 발전했다. 고대세계의 국제어가 되었다가 페니키아와 그리스 문자를 거쳐 오늘날의 알파벳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수메르어는 우리말과 같이 체언 뒤에 조사가 붙는 교착어다, 우리말과 수메르의 공통어간이 같은 말도 많다. 예를 들자면 아빠, 엄마, 달, 사람, 아우, 북, 나락(볍씨) 등은 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메르인들은 상투를 틀었다는 점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씨름을 즐기고 순장을 했으며 결혼 전 신부의 집에 함을 가지고 가는 풍습도 같았다.

 수메르문명은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등으로 전파되어 건축기술 문자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크레타 섬의 유럽 최초문명인 미노아문명도 수메르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이 문명은 다시 그리스문명으로 계승되었다 그러므로 수메르 문명을 서양문명의 모체라고 한 것이다.

 수메르는 초기왕조시대의 혼란기를 끝내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하여 아카드제국을 건설한 ‘사르곤’왕의 석재부도에도 상투머리를 했다.   왕 앞에는 눈에 익은 신단수가 있고 이 생명의 나무에는 신교의 삼신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신단수의 본줄기가 3개이며 가지에 달린 열매도 3개씩이다. 왕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에도 3개의 열매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삼신사상의 표상으로 보인다.
 환국의 환족들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19세기에 유명한 지질탐험가이자 박물학자인 알렉산더 폰 홈볼트는 아메리카의 수많은 신화와 기념물, 우주발생에 관한 사고는 동아시아의 것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고 했다.

 미국 오리건 주의 포트 록 동굴에서 약 9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짚신, 방석, 삼태기, 조리 등이 발굴 되었는데 짚신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것과 모양이 같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금줄을 치고 죽은 사람의 입에 노잣돈을 넣어주고 자정에 제사를 지냈다. 인디언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과 토템신앙도 한국의 것 그대로다.

 인디언 여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업어서 키우고 어린이들은 우리아이들과 똑 같은 방법으로 실뜨기 놀이를 한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에는 절구, 소쿠리, 베틀, 어망 등은 한국의 옛 시골 살림도구와 같다.
 중남미의 아스텍문명과 잉카문명도 흰옷을 즐겨 입었다. 아스텍문명의 그림을 보면 남자들은 상투를 틀고 여자들은 비녀를 꽂았다.

 상투는 상두(上斗)로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나에게 인간의 몸을 허락해준 하나님과 내 마음을 맞추기 위한 일종의 안테나다. 유대인들이 모자를 쓰면서 내 위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과 같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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