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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사기] 진나라 승상 이사(李斯)가 분서갱유를 청한 이유
승상 이사 출처 : www.sohu.com/a/232195368_407664

진시황의 잔인함과 폭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예시로 드는 일화가 있습니다. 바로 분서갱유(焚書坑儒)입니다. 분서갱유란 진나라 승상(丞相) 이사(李斯)가 주장하고 진시황이 허락하여 단행된 일종의 탄압책으로 농서 등 실용서를 제외한 사상 관련 책들을 모두 불태우고 수백명의 유생들을 생매장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사는 어떤 이유를 들어 분서갱유를 청했을까요? 《사기》<진시황본기> 원문에 나온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승상인 이사李斯가 말했다.

“오제五帝는 다스림이 서로 겹치지 않았고 3대三代(하・은・주)는 서로 답습하지 않고 각자의 방법으로 다스렸어도 다스림이 서로 상반되지 않은 것이 시대가 변해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대업을 창시하시어 만세의 공로를 세우신 것은 진실로 어리석은 선비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또 순우월이 지금 3대의 일을 말하지만 어찌 본받을 것이 있겠습니까? 이전에는 제후들이 함께 다투었으므로 떠도는 학자들을 초대하여 후하게 대접하였습니다. 지금은 천하가 이미 안정되어서 법령이 한 곳에서 나오고 백성은 집안에서 마땅히 농사와 공업에 힘쓰고 선비들은 법령에서 피하고 금지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배워 익히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 유생들은 지금을 스승으로 삼지 아니하고 옛 것만을 배우면서 지금의 세상을 비난해서 백성을 현혹해서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승상인 신 이사는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 옛날에는 천하가 흩어지고 혼란스러워 하나로 통일시킬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후들이 함께 일어나서 모두가 옛날의 도道를 말하면서 지금을 해롭다고 하고, 헛된 것을 꾸며 말해서 사실을 어지럽히니, 사람들은 사사로운 학문만 좋게 여기고 폐하가 세운 것을 그르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천하를 병합하여 천하를 소유하였으니 흑백을 분명히 하여 일존一尊(황제)께서 결정해야 합니다. 사사로이 배워 서로 함께 조정의 법도와 가르침을 비난하고, 사람들은 법령이 내려지는 것을 들으면 각자 그 배운 것으로 이를 의논하고서 조정에 들어와서는 마음속으로는 비난하고, 조정 밖으로 나가서는 항간의 여론을 일으켜 군주에게 과시하는 것을 명예로 삼습니다. 기이한 것을 취하면서 고상하다고 여겨 무리들을 거느리고 비방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금하지 않는다면 군주의 위세는 위에서 떨어지고 당여黨與(붕당)들이 아래에서 결성될 것이니 금지시키는 것이 편안할 것입니다.

신이 청컨대 사관史官에게 진秦나라의 기록이 아닌 것은 모두 태우게 하십시오. 박사관博士官의 직책을 맡지 않았는데도 천하에서 감히 시詩와 서書와 제자백가의 서적들을 감춘 자가 있다면 모두 태수나 위尉에게 바치게 해서 뒤섞어 불사르게 해야 합니다. 감히 서로 마주하고 시와 서를 말하는 자가 있으면 기시棄市에 처해야 합니다. 또 옛날 일을 가지고 지금을 비난하는 자들은 멸족에 처해야 합니다. 관리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검거하지 않으면 같은 죄로 처벌해야 합니다. 명령이 내려진 지 30일이 지났는데도 태우지 않는 자들은 경형黥刑(이마에 먹물로 죄명을 적는 것)에 처하거나 성을 쌓는 일에 동원시켜야 합니다. 불태워 없애지 않을 것은 의약, 점복占卜, 농사 서적이니 만약 법령을 배우고자 하는 자들이 있으면 관리를 스승으로 삼게 하십시오.”

시황제가 제制하여 “허락하노라.”라고 말했다

이사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유생들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진시황의 정치를 존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임금이 시행하는 정책과 법도를 비방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개탄한 이사는 지금의 정치를 따르게 하는 방법으로 유생들의 사상을 탄압하는 길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전국시대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로서 여러 사상가들이 자신의 사상을 주장했습니다. 맹자는 오제삼왕의 정치를 표본으로 삼아 민본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묵자墨子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사상兼愛思想을, 장자莊子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밖에도 병가兵家, 명가名家 음양가陰陽家 등 다양한 사상이 존재했습니다. 이사는 이런 사상들을 허언난실虛言亂實의 사회악이라면서 이로 인한 사회의 혼란을 우려했습니다. 한비자와 동문수학한 이사는 공평한 법을 집행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법가法家의 대표적인 사상가였습니다.

​이사는 심지어 둘 이상이 모여 '시와 서를 말하는 자가 있으면 기시棄市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기시란 고대 중국의 사형제도의 하나로 저잣거리에서 죄인의 목을 베어 일벌백계一 罰百戒의 본보기로 시체를 길거리에 걸어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게 하는 형벌입니다. 서로 모여 사상을 나눈다고 기시에 처한다니, 끔직한 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후한 말기의 관료 응소(應劭)는 “백성들이 모여서 말하는 것을 금지시킨 것은 그 자신을 비방할까 두려워해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분서갱유는 진시황의 사상탄압과 폭압으로만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공존합니다. 진시황에 대한 이런 평가는 진 왕조를 이은 한 왕조의 입장에서 폄훼해 기록한 역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왕조의 진시황에 대한 편향된 평가가 분서갱유라는 하나의 사건에 뒤집어 씌워져 극대화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불태워진 책들은 제한적이었고, 생매장 당한 유생들 대부분은 백성들을 현혹시키던 모리배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책 《신주사기》<진시황본기>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이글은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블로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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