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모의 단군교
나철과 정훈모 두 사람은 사상적 차이로 1910년에 분립한 뒤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정훈모는 일제강점 치하 국내에서 단군교를 지키기 위해 1910년부터 1936년까지 경전 간행과 교리의 체계화, 예식 정비에 주력하였다. 여러 외압과 내분에도 불구하고 천부경·삼일신고·성경팔리의 3대 경전 체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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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정훈모 전집1,2,3(2015년 5월 출간)』편자들은 정훈모의 유품 중에서 1913년에 제정한 「단군교종령(檀君敎宗令)을 발견했다.
“천부경(天符經)과 각사(覺辭)의 진리(眞理)를 단전(丹田)에 양정수련(養精修鍊)하야 심리(心理)에 도력(道力)을 득(得)하야 감령성(感靈性)을 통(通)한 교인(敎人)에게난 대종사(大宗師)가 특별(特別)히 신전(神殿)에 고유(告由)하고 영고장 (靈誥狀)을 수여(授與)하야 포증(褒證)함” 『단군교종령』(정훈모, 1913)
「단군교종령」의 출판 허가 청원 날짜는 대정(大正) 2년 곧 1913년 7월 31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천부경은 최소 1913년 7월 이전에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해서 환단고기를 위서라 주장하는 이문영 씨는 칼럼(뉴스톱 2018.11.16)에서 "정훈모의 단군교는 대종교와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대종교가 가진 경전보다 신성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것을 1913년에 생각해낸 ‘천부경’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하여 <천부경>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설명일 것이다. "라고 했다.
즉 단군교의 정훈모가 혹은 단군교가 '천부경'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고 보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 쓴 단어처럼 ‘합리적인 설명’이 아니다. 천부경 철학의 깊이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천부경이라는 단어를 먼저 만들고 3,4년후에 천부경 81자를 만들었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내뱉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종령宗令은 그 종교의 헌법과 같은 글이다. 거기에 천부경이 실체가 없는데 천부경이라는 단어만 먼저 만들어넣었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이는 2015년에 『단재 정훈모 전집』이 발간되며 위서론자들의 주장이 뒤집히는 내용이 나오자 어떻게든 일단 아전인수식으로라도 무마해보자는 주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1913년에 천부경이 언급된 것은 '천부경'이 그해 이전부터 존재하기에 천부경을 언급했다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다면 1913년 이전에 실재 천부경이 있었다면 그런 기록이 어디에 있을까? 바로 1911년에 발간된 <환단고기 초간본>이다. 환단고기에는 '천부경'이 수록되어있다.
이 하나의 발견을 통해서도 "1911년 계연수 선생이 출간한 환단고기가 있었다"는 것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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