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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수 선생 살해한 감영극 실체 드러나이유립 선생의 계연수 선생 죽음에 대한 증언이 사실로 드러났다.

계연수 선생 피살 (1920년 8월 15일)
계연수(桂延壽)의 자는 인경(仁卿)이고 호는 운초(雲樵)다. 평안도 선천에 살았다. 이기의 문인으로 백가(百家)의 책을 섭렵했다. 무술년에 단군세기와 태백유사 등을 간행하고 기미년(1919년) 이상룡 막하에 들어가 서로군정서의 참획에 공을 세웠다. 경신년(1920년)에 만주에서 사망했다’ (해동인물지 1969년 坤)

계연수 선생 피살에 대한 기록을 보자. 

①1969년 해동인물지 :  만주에서 사망
②1975년 5월 커발한 47호 : 남만주에서 피살
③1979년 3월 자유지 : 위순사감독 감연극(一云 감영극)이란 자가 “조선역사를 고취하는 놈은 일본제국 대동방평화정책에 방해하는 것이니 모두 빨리 잡아없애야 한다”하여 기어코 밀정을 홍성납자(紅石拉子)에 보내여 운초 선생을 암살하고 말았다. 이때가 단기 4253년 8월 15일이었다”


이유립 선생은 계연수 선생을 살해한 자가 '감영극'이고 장소는 관전현의 '홍성납자'이며 시기는 1920년 '8월 15일'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과연 이 내용이 사실일까? 이를 유추해볼 수 있는 기록이 최근 발견되었다.

'감영극'에 관해서는 최근에야 그가 실제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독립신문>에 여러 차례 그 이름이 나올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주로 집중적으로 이름이 거론된 시기는 1920년이다. 

환단고기 편저자 계연수를 살해한 감영극의 실체를 드러낸 언론

창성군 운두리에 거하는 안연지(安延之)는 該郡內에 密偵인대 그 여식을 중국순경파견소장 류신(劉信)에게 첩으로 給하고 보조원(補助員) 감영극(甘永極)과 합동하야 왜탐(倭探)에 진력한다 하며 沿江일대지방에는 일인(日人)이 십리간에 형사 7인식(七人式) 置하고 주야순행함으로 통신과 통행이 두절되었다고  (독립신문 1920-01 –10 )

 

창성군(昌城郡)을 시찰한 모씨의 談에 의하면 同郡은 小郡임에 不過하고 주구(走狗)는 많은대 그 중 악독한 자는 감영극(甘永極), 李基用, 朴萬秀, 許尙泰, 尹景燁 等이오 …. 이상 다 사형(死刑)은 선고하엿스나 아직 집행유예중이라고  (독립신문 1920-05 –27 )
 

신한민보 1920년 06월 29일자에는 "...창귀들은 심히 많다고 경시 한모의 말인대 그중에 가장 악독한 자는 감영극...."이라 하여 밀정(창귀) 감영극을 언급하고 있다.

신한민보는 1909년 2월 10일 미주 지역의 한인 단체들이 통합하여 결성한 국민회(國民會)의 기관지로 창간된 신문으로 국문으로 매주 수요일에 발행되었으며, 3ㆍ1운동 때에는 격일로 발행되기도 했다. 여러 차례 휴간되기도 했으나 해방 이후까지 꾸준히 발행되었다.

가장 악독한자 중에서도 맨 앞에 이름이 놓였다. 

삭주군(朔州郡) 살던 명창하(明昌夏)씨는 본국에서 거주치 못하게 되여 관전현삼분자(寬甸縣三岔子)에 이주하였더니 작년(1920년) 4월경에 적헌병급보조원(補助員) 감영극(甘永克)외 5,6명이 와서 가택을 수색하야 의복 기타 4백여원 가치의 물품을 탈취하다. 그 후 6월 경에 다시 와서 남은 가구를 모두 불태우고 11월경에 적순사 鈴木과 爪牙 高炳根外 7,8명이 다시 와서 명씨의 부인을 난타하야 중상케 하더니 금년 1월경에 의주청성진義州淸城鎭의 적병 7,8인이 중국군병을 거느리고 와서 가옥까지 마자 방화하여 바려슴으로 명씨(明氏)의 온 가족은 단지 설상(雪上)에서 방황하는 중이라더라. (독립신문 1921년 3월 26일)

감영극의 활동범위와 악독한 행위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일단 관전현까지 여러번 넘어갔다. 압록강을 넘으면 관전현인데 거기까지 감영극의 활동범위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관전현 홍성납자에서 피살된 계연수 선생에 대한 기록에도 부합한다. 

감영극은 명장하씨를 추적하여 가택을 수색하고 물품을 탈취하고 가구를 불태우고 부인을 난타하여 중상을 입게 하고 가옥까지 방화했다는 내용이 독립신문에 실려 있다. 그가 행했던 행위에 대한 이런 묘사는 계연수 선생과 배달의숙을 어떻게 파괴했을까를 유추하게 한다. 

이런 사실은 계연수 선생의 죽음 뿐만 아니라 그 생애 전반에 대해 증언한 이유립 선생의 글에 신뢰성이 더해진다.

밀정 감영극 무리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압록강에 버려진 계연수 선생   출처 : 환단고기 북콘서트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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