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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단학회,대종교 창립 초기 과정

1909년 1월 15일 단군교 중광식에 참석
1909년 나철과 정훈모는 도쿄의 가이헤이칸 여관에서 백두산 도인 두일백을 만나 경전류를 전수받고 귀국했다. 나철은 1월 15일에 서울에서 정훈모·오기호(吳基鎬)·이기(李沂) 등과 함께 단군교의 중광식(重光式)을 거행하고 초대 도사교(都司敎)가 되었다.

1909년 3월 16일 단학회 창립 합의, 5월 5일 참성단 고유제

평소에 나철 선생과 서로 심각하고도 광범위한 토론의 기회를 많이 갖기도 했으나 결국 삼신설(三神說)의 정의와 신시개천과 단군건원 등 핵심문제의 귀일점을 찾지 못하고 나홍암은 단군교의 체제를 갖추어 세상에 표명하게 되니 자강회원중 계연수,이연보,김효운 등 여러 선생들이 간곡한 희망에 의하여… 단학회를 만들기로 합의했으니 때는 융희 3년 3월 16일이며 참성단에 고유하기는 그해 5월 5일이었다한다.  (커발한 잡지 1968년 9월 1일호)

단학강령3장 ①제천보본(祭天報本) ②경조흥방(敬祖興邦) ③홍도익중(弘道益衆)

1909.7.13. 단학회 해학 대종사의 죽음 
 해학 이기 선생은 나라를 뺏긴 것에 분노하여 절식으로 삶을 마감하였다.


1909.10.03 단학회 취지문 반포
기유년(1909년) 대영절과 개천절에 마리산 참성단에서 삼신일체상제의 주벽 아래 환국시조 천제환인,신시시조 환웅천황,조선시조 단군왕검을 배향으로 하는 천제의식을 맞추면서 단학회 취지문을 반포하고 경술이후로 특히 서북지방을 근거로 하여 점차 비밀리에 회세의 확대발전을 위하여 최대 노력을 한 것이다. (커발한 잡지 1968년 9월 1일호)

1910년 8월 5일 대종교로 개칭
홍암 나철과 단재 정훈모. 두 사람은 사상적 차이로 1910년에 분립한 뒤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강제병합 (경술국치)

1910년 음력 9월 10일 정훈모, 단군교 명칭 고수
단군교의 창교 때부터 적극 참여했으며 개명 이후 북부지사교(北部支司敎)의 직책을 맡고 있던 정훈모는 1910년 음력 9월 10일 단군교의 명칭 고수를 명분으로 내걸고 ....나철과 분립하였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요약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단군교  중광식 (1909.1.15.)→이기의 단학회(1909.3)→이기의 죽음(1909.7.13.)→단학회천제,취지문반포(1909.10.3.)→한일강제병합 (1910.8.22.)→나철의 대종교(1910.8) → 정훈모의 단군교 (1910. 음 9.10)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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