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단학회 회장 이덕수 선생은 평북 삭주(朔州)에서 태어났다.
1914년 3월 16일 1차 제천혈맹에 계연수, 이관집, 최시홍, 오동진, 이용담, 전효운, 박옹백, 양승우, 이태집, 서청산, 백형규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어 1915년 단학회 2차 제천혈맹에는 이덕수 선생이 백암 홍범도 장군과 석주 이상룡선생을 소개하여 참가케 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하였다. 주에서는 의민사(義民社)를 조직하여 사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한족회 민사부장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또한 서로군정서의 부관으로도 일하였다.
1920년에는 벽산대(碧山隊)를 조직하여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와 함께 전투에 참가하였다.
1921년에는 양승우(楊承雨)와 같이 벽창(碧昌) 청년의용대를 조직하여 총지휘에 임명되었으며, 1924년에는 양승우와 함께 창성(昌城)·갑암(甲岩)출장소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3대 단학회 회장 최시흥 장군에 이어 4대 단학회 회장이 되었다. 단학회장 시절 고문은 이탁,여운형, 간사는 주원건,김서준을 두었다. (주원건은 독립신문 1923년 1월 1일에 지난해 도움준 명단으로 이유립 선생 사촌인 이유항과 나란히 기록되어있다. 이를 볼때 단학회 시절 간부 명단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1925년에는 정의부의 중앙위원에 임명되어 활약하였으며 동년 10월 9일에는 평북 독판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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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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