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항(李裕沆) ...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 다만 이름 가운데 자(裕)가 같아 같은 항렬이 아닐까 추측할 뿐...어쩌면 형제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이유립)는 <계연수>나 <이관집>은 말했지만 <이유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이유립과 혈연이 있었다면 독립운동을 했다고 스스로 증언하여 유공자가 된 사람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서론자)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이유립 사촌 이유항이 독립운동 유공자로 나오자 이유립 선생이 그를 언급한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유립은 이유항의 단학회 행적을 증언했다.

이유항(李裕沆 1893 - 1922?)은 평북 삭주(朔州) 출생으로 환단고기 전수자 이유립 선생의 사촌형으로 부친 이관집 선생의 동생 이태집의 아들이다. 한마디로 이유립 선생의 사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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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학회의 간사로 활동한 이유항 , 또다른 단학회 간사인 주건원과 나란히 독립신문에 이름이 실렸다. |
1921년 8월 2일 청수읍 대안 태구(靑水邑對岸台溝) 뒷산에서 전택춘(全澤春)·전택수(全澤秀) 등과 함께 적진 습격을 계획하던 중 일경의 포위 공격을 받고 교전하였다.
1922년 12월에는 서로군정서 별동대원으로서 단학회 이용담(李龍潭) 등 7명의 동지와 함께 국내 삭주군 수풍동(朔州郡水豊洞)에 진입하여 밀정 최석란(崔錫蘭)을 사살하고, 영산(永山) 시장을 습격하여 그 곳 경찰 주재소를 소각, 적의 무리 구축 등의 사실이 확인된다.
이유항 선생은 그의 부친 이태집 등과 함께 단학회 활동을 하였다. 특히 5대 이용담 선생이 단학회 회장일 때에는 간사를 맡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의 순국년은 1922년이라고 설이 있고 해방을 맞이한 후라는 설이 있다. 다만 독립신문 1923년 1월자에 그의 이름이 나와 있는 이름이 단학회 간부 명단과 일치함, 함께 이름이 나열되고 있는 '주건원' 의 이름이 단학회 간사에도 이름이 있는 점을 볼때 단학회 임원 명단의 높은 신뢰성을 본다면 이유항은 22년이 아닌 이후까지 생존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항의 천부경 찬
天符爲道 知我求獨. 不知者弱 能知則强. 富哉天符 萬理條暢 愚可得明 懦能健勇. (李裕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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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신문에 단학회 간사인 주건원,이유항이 나란히 나와 있다. 이는 단학회 간부 명단이 사실임을 드러낸다.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300면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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