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단학회 2차 제천혈맹에 참여한 14명 중에 허기호(許基浩) 선생이 있으며 1919년 3월 16일의 조선인 십보장 선언에도 참석하였다. 천마산대로 활동하였으며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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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호 선생은 단학회 2대 계연수 회장일때 김효운 선생과 함께 단학회 간사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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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호 선생은 천마산대 대원으로 활동을 하였다. 1920년 6월에 적병 수백여명이 사로(四路)로 침입하야 두룡산(頭龍山) 우리 본대를 공격함애 鋒火를 相交하야 맹렬한 전투를 행한 결과 적병 3명이 즉사하고 우리 측에서는 허기호(許基浩), 독고무(獨孤武), 이창근(李昌根), 류태순(柳泰純), 오원문(吳元文) 5人이 전사하고 3인이 잡혔다. - 천마산대 약력 (독립신문 19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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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대 약력 (독립신문 19230314)
1920년 6월 서로군정서 의용군 이동규(李東奎) 등 1대 평안북도 삭주군 양산면(朔州郡 兩山面) 적 주재소 습격,격전 중 허기호(許基浩) 등 4명이 전사했다. ([출전] 독립운동사 5) 라는 기록이 있는데 독립신문의 내용과 흡사하나 서로군정서 의용군 이동규가 등장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평북 삭주군 양산면에서 일제 경찰대와 전투 끝에 전사한 무장독립전사 이동규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詩를 소개한바 있다.
푸른 산 곧은 나무는 우리들의 동지이다.
서로 한 대열이 되어 독립을 위해 싸우자!
우리 강토에서 큰 도끼 다시 찍어 보면 죽은들 어떠하랴!
내 평생 소원 인 것을...
천마산 그 빛은 만고에 길이 푸르고
압록강 푸른 물결은 쉬지 않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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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선생에 대해서도 기록이 없다. 다만 그가 단학회원으로 1915년 제천혈맹에 허기호 선생과 함께 참석했다는 점 그리고 이후 1919년 3월 16일 조선인 십보장 선언에도 참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 점에서 이유립 선생이 남긴 독립운동에 대한 증언과 글이 너무나 소중하다.
1920년 7월 8일 천마산대 최시흥, 김치현(金致賢),김상옥(金尙玉) 등과 허기호가 삭주군 월하면 화하동(化下洞)에서 친일파 최학정(崔學貞)을 사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 한민족독립운동사 8 p.55 한국독립운동사연구 3 p.288) 이 기록은 허기호가 6월에 이미 전사했기 때문에 충돌되는 부분이 있어 연구가 필요하다.
이후 광복군 총영에서는 1922년 4월 5일에 순국선열을 위하여 비장한 추모식을 거행하였는데 이때에 명단에 허기호 선생이 보인다.
독립신문 순국 諸氏 追悼會 1922-04 -15
我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에서는 去月五日에 殉國諸烈을 위하야 비장한 추모식을 거행하엿는대 今에 그 殉國 諸氏의 姓名을 擧하면 左와 如하다더라....
단학회의 간사로 제천혈맹,조선인십보장 활동이 모두 기록되어있는 허기호 선생은 단학회의 독립운동을 입증해주고 있다. 2대 계연수 회장 당시 간사로 활동한 시간대도 일치하고 있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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