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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감영극이 계연수 포함 단학회원들을 공격했음이 밝혀져

밀정 감영극은 단학회 2대 회장인 환단고기 편저자 계연수 선생을 살해했다. 그런 그가 또다른 단학회 간부를 타겟으로 하였음이 밝혀졌다. 독립신문 1921년 3월 26일자에 나오는 '명창하' 선생이 바로 단학회 간부다. 감영극 무리들은 관전현까지 찾아와서 명창하 지사의 부인을 난타하여 중상을 입게 하고 집을 방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삭주군(朔州郡) 살던 명창하(明昌夏)씨는 본국에서 거주치 못하게 되여 관전현삼분자(寬甸縣三岔子)에 이주하였더니 작년(1920년) 4월경에 적헌병급보조원(補助員) 감영극(甘永克)외 5,6명이 와서 가택을 수색하야 의복 기타 4백여원 가치의 물품을 탈취하다. 그 후 6월 경에 다시 와서 남은 가구를 모두 불태우고 11월경에 적순사 鈴木과 爪牙 高炳根外 7,8명이 다시 와서 명씨의 부인을 난타하야 중상케 하더니 금년 1월경에 의주청성진義州淸城鎭의 적병 7,8인이 중국군병을 거느리고 와서 가옥까지 마자 방화하여 바려슴으로 명씨(明氏)의 온 가족은 단지 설상(雪上)에서 방황하는 중이라더라. (독립신문 1921년 3월 26일)

명창하는 단학회 잡지 커발한에 의하면 단학회 관동분회 총무로 일했음이 밝혀졌다. 당시 관동분회장은 김효운이었고 간사는 김윤선,이윤찬이었다. 이로써 당시 압록강을 건너 관전현으로 넘어와 단학회 수장이었던 계연수 선생을 살해한 감영극 무리들에 관한 이유립의 증언은 더욱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단학회 간부 명단 중 단학회 관동분회 총무였던 명창하가 보인다

'감영극'이라는 밀정이 있음이 여러 언론 기사를 통해 밝혀졌으며 그의 활동무대에 압록강 너머 관전현이 포함됨이 독립신문을 통해 밝혀졌으며 그가 사람을 상해하고 집을 불태우는 만행까지 저지르는 잔혹한 인물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가 공격한 독립운동가 중에 단학회 간부가 있음까지도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정도라면 "위순사감독 감연극(一云 감영극)이란 자가 “조선역사를 고취하는 놈은 일본제국 대동방평화정책에 방해하는 것이니 모두 빨리 잡아없애야 한다”하여 기어코 밀정을 홍성납자(紅石拉子)에 보내여 운초 선생을 암살하고 말았다. 이때가 단기 4253년(1920년) 8월 15일이었다”라는 1979년 3월 자유지의 기록은 사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독립신문 1921년 3월 26일자 기록을 통해 추론하면 1920년 6월경 감영극은 명창하 선생 집의 가구를 불태우고 11월경 그 부인을  난타하여 중상을 입힌 사이인 8월에 계연수 선생을 살해한 것이다. 

"그 중 악독한 자는 감영극(甘永極)...등이오" (독립신문 1920-05 –27 ) 라는 평가를 보면 이런 행위들과 맞아떨어진다.

대한독립단은 남만지역의 환인(桓仁),장백(長白),무송(撫松),임강(臨江),관전(寬甸),집안(輯安) 등 10개 현에 지단을 세웠다. 이후 1923년까지 국내와 만주지역에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거쳐 의군부(義軍府)로 발전하였다.명창하(明昌夏) 선생은 단학회의 간부인 독립운동가다.  1920년대 초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소속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4월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하였으며,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이념으로 하고 있었다. 복벽주의는 나라를 되찾고, 군주정(君主政)을 회복하려는 사상이다.  본부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두었고 국내외에 모두 100여개소의 지단,지부를 설치하였으며, 만주지역에는 거류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는 관구(管區)를 두고 10구에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명창하는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읍내(邑內) 출신이며, 관전현(寬甸縣) 고자구(孤子溝)에 거주하였다. 1921년 부하 약 20명을 지휘하여 평북 삭주군(朔州郡)에 있는 일제 침략기관을 공격하였다라고 기록이 남아 있는데 아마도 1921년 1월경에 감명극과 의주청성진(義州淸城鎭)의 적병 7,8인이 중국군병을 거느리고 와서 임씨 가옥까지  방화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로 보여진다. 

명창하의 항일항쟁 활동은 전해져오는 것이 없으나 30년까지 활동을 하다가 30년 3월에 잡힌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명창하 피체 (잡히다) , 중외일보 [中外日報] 1930년 09월 15일 원소장처 : 종로도서관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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