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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봉우 선생도 천부경과 계연수를 언급했다계봉우 <조선문학사> (1950)에 나온 천부경과 운초 계연수

독립운동가 계봉우 선생도 천부경과 계연수를 언급했다. 그의 1950년 <조선문학사>를 보면 정신철학통편을 통해서 알게 된 천부경과 계연수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1950년 전후때까지도 천부경과 계연수 선생이 계속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봉우 <조선문학사> (1950)에 나온 천부경과 계연수

 檀君과 「天符經」.
  「一始無始, 一析三, 極無盡, 本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 無匱化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三合六, 生七八九, 運三四成環, 五七一妙衍,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 本太陽昻明, 人中天地 一一終, 無終一.」

정신철학통편

  이 「天符經」은 曙宇 全秉薰(서우 전병훈)의 撰輯한 『精神哲學通編』의 首章에 실리었다. 「天符經」의 眞僞는 장차 말할 셈하고, 曙宇(서우 권병훈)가 어떤 사람이냐를 먼저 말할 필요必要가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5세까지 儒業을 힘쓰다가 東粤에 入하여 「주역周易」과 「참동계參同契」를 연구하였다. 그러나 마음의 만족을 얻지 못하였던데, 한번은 羅浮山 古空蟾(고공섬 고성명)先生을 만나서 玄關眞傳을 받았다고 한다. 玄關은 玄牝의 도를 가리킨 것이니, 이른바 眞傳은 玄關秘訣 打坐式이었다. 人身은 정기신精·氣·神 그 세 가지가 凝聚하여서 된 까닭에 道法에서 신神으로써 정精과 기氣를 玄牝의 內에 운용하여 정精을 煉하며, 기氣를 화化하나니, 氣가 化하여는 신神이 되고, 신神이 化하여는 진眞을 이룬다 하였다. 玄牝의 內에 운용運用이란 것은 打坐式을 이름인데, 그 式(近世에 이른바 靜坐法에 가까운 것)을 행하면 마침내 진(眞을) 이루게 되고, 眞을 이루면 천선(天仙)이나, 지선(地仙)으로 될 수 있고, 비록 진眞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병病을 물리치고, 수壽를 더하여 인선(人仙)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곧 도교道敎의 정수精髓요, 정신철학精神哲學의 근저根柢이었다.

  이제 말할 것은 檀君의 「天符經」인데, 그가 그것을 어디에서 얻어 통편通編의 首章에 실었는가? 그의 緖言을 보면 그 經의 81자가 神誌(신지)의 篆으로 石刻되었었는데, 仙眞 崔致遠(최치원)이 그 비를 발견하고서 그 字를 解하여 白山에 刻하였던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昨年 丁巳(公歷 1917年)에 桂延壽(계연수)란 道人이 藥을 캐러 寧邊郡 白山에 들어갔다가 石壁에 쓰인 그 字를 照寫하고 그것이 老儒 尹孝定(윤효정)의 손을 거치어 자기에게로 오게 됨에, 그 意義를 주해註解하여 통편通編의 머리장(首章)에 기입하노라 하였다.

  「天符經」에 對한 그 註解를 보면 太極에 基本한 天地人 三才와 水火木金土의 五行으로써 그것을 주해註解하면서 老子의 「心易圖」에 依據한 呂純陽(여순양) 八品經의 「太極圖」와 周濂溪(주렴계)의 그것을 合致시키었다.

  檀君의 世에는 漢土에도 伏羲氏의 劃한 八卦, 그것을 演한 神農氏의 六十四卦만 있었을 뿐이다. 太極說도 없었고, 五行說도 없었다. 그러면 太極說은 언제 생기었는가? 太極이 兩儀를 生하고, 兩儀가 四象를 生하고, 四象이 八卦를 生하였다는 解說은 文王의 彖象·係辭와 孔子의 說卦·文言이 添付되어 周易이란 名稱을 얻은 그 後에 생기었다. 五行說은 언제 생기었는가? 檀君보다 一千餘年을 뒤떨어져 난 箕子의 홍범구주洪範九疇에서 오행이란 말을 처음 보게 되었고, 戰國의 世에 鄒衍(추연)이란 者가 그것을 敷衍하되 五行은 天地萬象을 形成한 要素라 하며, 그 變化를 說明하며 또는 人事에까지 相生相克說을 應用하였나니, 이것이 곧 오행설의 嚆矢이었다. 이런 실증을 들어서 그 經의 虛僞를 曙宇에게 물어본다면 제 아무리 웅변(雄辯)이라도 어떤 시원한 답변을 주지 못할 것이다. 「尙書大傳」의 劈頭에 記入한 「堯典」·「舜典」도 우리로 하여금 後人의 僞作이라는 疑惑을 품게 하거늘, 堯舜과의 동시同時인 檀君에게 그런 경전經典을 지을만한 한학지식漢學智識이 언제 준비準備되었던가? 한문漢文이 벌써 그 當年에 輸入되었던가? 그렇지 않다면 그 經을 누가 지었다고 할까?

  曙宇(서우 전병훈)의 門下에는 그 道를 배우는 漢人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贍富한 學識으로도 「天符經」의 虛僞를 깨달은 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桓國의 하느님이 그 아들 桓雄(환웅)에게 天符印 세 個를 주어 人間에게 보내어 … 」에서 天符二字를 取하여 名稱을 만들고서 黃帝의 「陰符經」을 對立한 것이니, 그래도 慕華의 桎梏에서 벗어나서 우리 朝鮮 사람에게도 黃帝보다 못하지 아니한 오히려 더 神聖한 哲學의 創作者 檀君이 있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나타낸 그의 자존심에 대하여는 조금도 허물하지 않는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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