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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학회 사승 오희원(吳熙源) 선생의 교육 계몽운동

오희원 선생(1873 - 1936)은 평안북도 철산(鐵山)군 참(站)면 이응(二鷹)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4월 양기탁(梁起鐸) 안창호(安昌浩) 전덕기(全德基)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로서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평안북도 지회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교육구국운동에 헌신적으로 노력했으며,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 설립의 이사직을 맡았고, 평양의 대성학교(大成學校) 설립에 5천원을 기부하는 등으로 적극 지원하였다.

신민회의 무관학교(武官學校) 설립과 독립군기지 창건운동을 저지하고 한국민족의 국권회복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일제가 소위 「사내총독암살음모사건(寺內總督暗殺陰謀事件)」을 조작하여 전국의 신민회 회원 800여명을 일제히 검거할 때 오희원은 철산군감(鐵山郡監)으로서 신민회 군책임자로 지목되어 1911년 9월에 체포되고 경성지방재판소에서 1912년 9월 28일 징역 7년의 언도를 받았다. 공판투쟁을 완강히 전개한 결과 1913년 3월 20일의 공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으나, 실질적으로 2년간의 옥고를 겪었고, 일제의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선생은 평안북도 도내 굴지의 자산가이고 인망이 높았다.  1935년 8월 10일에 평북 철산鐵山에서 사망했다. 그는 단학회에서 사승(祀承)이었는데 사승에는 그외에 이봉우,이양보 선생이 있었다. 

정부에서는 독립운동에 끼친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敎育界의 先覺者 吳熙源翁長逝 十日鐵山鄕第에서 1935년 8월 13일 [매일신문]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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