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 이름은 삼규, 자는 현복, 호는 온당이고 태천사람이다. 처음에는 박문일에게 배웠고 스승이 죽은 뒤에는 유인석을 따랐다.
나라가 망하자 봉천성 관전현 소아하로 가서 몰래 동지들과 뜻을 모아 광복을 도모하였다. 1919년에 독립군단의 부총재가 되어 박장호,조맹선 등과 함께 의병을 규합하여 거사를 일으킬 것을 도모하였다.
1920년 5월 16일 일본군 장교 사카모토가 수십명의 기병을 이끌고 향로구를 습격해 와서 공이 청산구로 달아났는데 적병이 쫓아와 공과 김덕신 등 60명이 붙잡혔다.
태평초에 이르러 잘못을 시인하고 복종할 것을 권하자 공이 크게 꾸짖으며 말하였다.
" 내 나이가 지금 칠십이다. 나라의 광복에 뜻을 두고 여기에 이르렀으니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어찌 원수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복종할 수 있겠느냐 죽은 뒤에 나의 뜻을 계승할 사람이 분명 수천만명은 될 것이니 죽을 것을 근심하지 않고 죽지 않을 것을 근심한다. 다시 무엇을 돌아보겟는가"
그리고 김덕신 등에게 말하기를 "나를 따라 헛되이 죽지는 말라"라고 하니 김덕신 등이 눈물을 흘리며 " 스승께서 순절한 뒤에 어찌 차마 혼자 살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마침대 환인 사진자 북쪽 30리쯤 되는 수풀로 끌려가 적에게 참혹한 죽음을 당하였다.
김덕신은 세발의 총알을 맞아 피가 샘처럼 솟구쳤는데 기어서 중국인이 관할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말을 할 수 없어 글로 써서 백삼규가 해를 당한 일을 알리고 자신은 스승을 위해 총을 맞았으며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백립'은 나라를 위한 상복이니 벗기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결국 숨이 끊어져 죽었다.
- 조소앙의 『유방집』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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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방을 위하여 몸을 바치신 분들⑨, 백삼규선생 어린이신문1946년 12월 14일자.
백삼규는 북녁 땅 제1의 장서가 백관묵의 아들이다. 환단고기 범례에 의하면 백관묵 혹은 백관묵 집안에서 삼성기전 하와 단군세기를 계연수 선생에게 전수함으로써 환단고기로 묶여서 나오게 되었다.
백삼규 선생은 1895년 을미에 유인석과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하였고 관전 환인에서 농무계 향약계 설립 지도했으며 기원독립단조직하고 1910년 대한독립단 부총재에 피임되어 활약했다. 그리고 1920년 5월 관전 청산구에서 일병에게 피체되어 환인현에서 총살됨. 이후 안타깝게도 큰아들 인해 와 둘째 아들 인제가 순차로 순사하였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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