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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서 도려내야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2. 백제

고구려는 2세기 태조왕이후 ,백제에서는 3세기 고이왕이후 왕위가 세습되기 시작하였으며 신라에서는 4세기 내물왕부터.. (금성교과서 중학교판,2020년) 

2020년이 되었는데도 역시 태고내다. 태조왕,고이왕,내물왕만 계속해서 배우게 된다.


공주박물관의 백제 연대표(2020년)에는 고이왕 이전에는 백제의 건국만 표시해놓고 있다. 백제는 고이왕부터가 실제 역사라는 거다. 왜 고이왕 이전은 표시하지 않는 것일까? 


2002년의 국사 교과서다. 왕의 계보를 그려놓은 부록에서 백제 왕계보를 보면 고이왕 이후로는 재위연대가 보이고 고이왕 이전은 왕의 재위연도가 없다. 믿을 수 없는 왕계보라는 것이다.

영국에 있는 영국박물관 한국관의 연대표다. 삼국시대에는  traditionaly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Goguryeo traditionally 37 BC ~ AD 668
Baekje    traditionally 18 BC ~ AD 660
Silla      traditionally 57 BC ~ AD 676
Gaya     traditionally AD 42 ~ AD 562

traditionaly는 보통 “전통적으로” 라고 쓰이는데 “전하는바에 따르면”“전설에 의하면”이라는 뜻이 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라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단어다. 여기서는 문맥상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의미로 쓰여졌다. “문헌상으로 저렇게 적혀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가령 백제는 18 BC ~ AD 660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18 BC에 건국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고이왕'부터라는 의미다.   

 

백제왕실계보 (자료 : 한국사정보사이트 Histopia)

백제의 성립시기는 8대 고이왕부터? 

백제의 성립시점을 고이왕으로 본 것에는 한국 원로사학자 이병도가 고이왕부터 믿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 ...... 실제 상술과 같이 고이왕 때라야 엄밀한 의미의 건국이 가능하므로, 이를 백제의 태조로 비정함에 하등 불가함이 없는 까닭이다. 고이왕 이전의 세계(世系)는 추존(追尊)일 것이다."
  이병도, 『신수(新修) 한국사대관』59쪽

이병도는 고이왕 이전은 추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추존(追尊)이란 어떤 인물이 죽은 뒤에 생전의 직위보다 높은 직위를 올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병도 주장은 고이왕 이전은 왕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과연 그럴까? 

삼국사기의 정확성을 입증하는 무령왕릉 

그러나 백제 초기왕까지도 기록하고 있는 『삼국사기』의 정확성은 유물이 입증해준다. 1971년 우연히 발견된 공주 무령왕릉에 지석이 나왔는데, 지석은 무덤의 주인공을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 전하고, 그가 "계묘년(523) 5월 7일 붕(崩)했다"고 쓰여있는데, 『삼국사기』에는 무령왕에 대해 "왕의 휘(諱)는 사마(斯摩)"라 기록하고 있고, 그가 "재위 23년(523) 5월 훙(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덤의 지석과 『삼국사기』의 기록이 일치한다는 것은 『삼국사기』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 보여준다.

고이왕 이전의 역사를 입증하는 삼국사기 ‘태백주현’ 기록 (feat 박창범 교수)

 세계적인 천문학자 서울대 박창범교수는 삼국사기에 서기224 백제 7대 구수왕 11년 10월에 쓰인,금성이 낮에 보였다는 '태백주현(太白晝見)' 기록에 대해서 천문학적인 실증연구를 했다. 그 당시의 금성의 위치와 밝기를 계산해서 당시 기록이 사실인 것으로 증명했다.

금성이 낮에 보이는 현상인 태백주현(太白晝見)은 12세기에 편찬된 <삼국사기>에  신라에 4회, 백제 3회, 고구려 1회 등 모두 8회가 기록돼 있다.  이 중 금성이 태양에서 멀리 떨어짐으로써(최대이각) 가장 밝아지는 시기를 계산해본 결과 삼국시대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4개로 50%의 적중률을 보였다.

놀라운 점은 계산이 맞아 떨어진 삼국 최초의 기록은 백제 구수왕 11년(서기 224년)의 일인데 이는 서기 200년대 초부터 한국의 고대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천체를 관측하고 기록하였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또 금성은 공중에 먼지나 수증기가 없는 등 기상조건이 좋은 경우  평소 낮에도 볼 수 있는 행성이므로 나머지 4개의 기록들도 오기라고 볼 수 없다.

“태백주현(太白晝見), 낮에 금성이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고려 때 편찬한 역사서 ‘삼국사기’에는 이 구절이 모두 여덟 번 등장하는데 현대과학으로 계산하면 이 기록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지요.”

그중 제일 중요한 기록은 서기 224년인 백제 구수왕 11년 10월 낮에 금성을 관측했다는 기록이다. 박 교수는 과거 금성의 위치와 밝기를 계산해 이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별은 등급이 낮을수록 밝은데 평소 밝기가 ―3.9등급에 해당하던 금성이 당시에는 ―4.67등급에 이르렀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낮에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는 얘기다.

“이는 삼국사기에 나온 구수왕 11년 때의 기록이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사례입니다”

박창범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적 결과를 밝혀놓고 나머지는 학계에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역사의 진위(眞僞)를 천문학이라는 과학으로 증명한 쾌거다. 그런데 과학으로 증명해도 백제는 8대 고이왕 이전은 믿을 수가 없다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빠져 있는 학계는 묵묵부답이다.

 7대 구수왕은 바로 8대 고이왕 이전의 백제왕이다. 구수왕시절 천문학 기록이 맞다는 것은 고이왕 이전의 기록을 믿을 수 있다는 거다. 지금 우리 학계는 이병도의 고이왕 건국설에서 오히려 100년 이상 뒤인 근초고왕때부터의백제 국가성립 (쓰다소키치 주장) 운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다시한번 맨처음으로 돌아가 교과서를 보자

고구려는 2세기 태조왕이후 ,백제에서는 3세기 고이왕이후 왕위가 세습되기 시작하였으며 신라에서는 4세기 내물왕부터.. (금성교과서 중학교판,2020년) 

백제는 3세기 고이왕 이후에나 왕위가 세습되기 시작되었다고 기술되어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백제 왕 계보를 보자. 

1대 온조왕
2대 다루왕(多婁王, 재위: 28년 ~77년) 온조왕의 장남(삼국사기) ,차남(삼국유사). 
3대 기루왕(己婁王,재위: 77년 ~ 128년) 다루왕의 장남. 
4대 개루왕(蓋婁王,재위:128년 ~ 166년) 기루왕의 아들
5대 초고왕(肖古王,재위: 166년 ~ 214년) 개루왕의 장남
6대 구수왕(仇首王 재위 214년 ~ 234년)  초고왕의 장남

건국 초기 부터 왕위가 세습되고 있다. 금성교과서의 저 말은 거짓말이다. 저 글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리 학계는 고이왕부터가 진짜 왕이라고 본다"는 공식적인 선언을 해야 성립되는 말이다.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하면 안된다.

이상과 같이 우리 한국사 교과서,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부터 지역 박물관), 영국박물관 한국관 등은 모두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을 주입하기 위해 만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아직도 우리의 뇌를 세뇌시키고 있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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