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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 단학회 고문 맡은적 있어

여운형(呂運享) 선생은 단학회 고문을 맡은 적이 있다. 

단학회(檀學會)는 1909년 해학 이기 선생을 중심으로 만든 단체다.  해학 이기 선생은 동지였던 나철 선생과 광범위한 토론을 하였으나 결국 삼신설(三神說)의 정의와 신시개천과 단군건원 등 핵심문제에 대해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해학 이기 선생은 자강회원중 계연수,이연보,김효운 등의 간곡한 희망에 의하여 단학회(檀學會)를 만들기로 1909년 3월 16일 합의했다. 이렇게 하여 단학회가 결성되게 되었다. 

이후 5월 5일에는 마리산 참성단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단학회가 견고히 결성되어갔다. 이후 단학회가 조직화되면서 1대부터  회장,명예회장,고문,간사,교화사 등의 조직이 갖추어졌다.  

4대 단학회 시절 단학회 고문을 맡았던 여운형,이탁 선생

단학회 간부단학회 간부 명단은 커발한 17호 (1970년 3월 1일자)에 잘 정리되어있다. 이중 단학회 4대 이덕수 선생이 단학회장이었을 때 박은식 선생이 명예회장,이탁,여운형이 고문이었고 주원건,김서준이 간사였다. 

4대 단학회 간사이면서 임시정부 연통제 삭주임원이었던 '주원건'과 '김서준'

단학회 4대 간사 주원건(朱元鍵) 선생은 조선총독부 관보 제1771호 (1918년 07월 02일 )에 이름과 함께 거주지로 '삭주 신안동'이라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주원건(朱元健)은 독립신문 1923년 1월 1일호에 의연금을 낸 명단에 들어가 있다.  주원건과 나란히 열거된 인물에 '이유항'이 있다. 이유항은 이태집 선생의 아들이며 이유립 선생의 사촌이다. 5대 단학회 간사다. 두 사람이 나란히 열거된 것을 통해 같은 지역,같은 단체로서 함께 의연금을 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주원건,이유항 모두 단학회 간부를 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일항쟁기인 1919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내 및 간도 지방과 연락을 위해서 만든 조직인  연통제(聯通制)는 연통제 명단에 김서준(金瑞俊)과 주원건이 동시에 등장한다. 

단학회 간부 명단에 나온 인물들의 확실성을 볼때에 같은 연대에 여운형 선생이 단학회 고문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1922년 10월 28일 김구 여운형 김인전 손정도 등 독립운동가 7명은 이곳에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조직한다 1920년 고려공산당에 가입했고, 10월에는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 등과 함께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조직해 군사적 투쟁을 준비하기도 했다. 단학회 희천 분회 분회장을 맡았던 나창헌 선생도 노병회에 가담한 기록이 있다. 한국노병회에 가담한 단학회 인물에 대한 면밀한 조사도 필요해보인다. 

여운형 선생은 다른 단학회 간부들 오동진,홍범도,최시흥,이덕수,이용담,이유항,전봉천,박노철 등과 같이 천부경에 대한 예찬 글을 남겼다. 

太虛兩間 惟氣自盈. 獨此天符 萬世糧識. 無糧而飢 無識而劣. 桓雄天經 足富我民. 
태허(太虛) 사이에 오직 기운이 스스로 가득 차도다. 홀로 이 천부만이 만세의 양식(糧識)이 되나니 양(糧)이 없으면 굶주리고 식(識)이 없으면 졸렬해진다. 환웅천왕의 천부경은 족히 우리 민초들을 부유하게 할지로다.

단학회 고문이었던 여운형 선생이 천부경을 읊는 장면을 상상해보며 독립운동가들의 사상과 철학의 전 면모가 확연히 드러나게 되기를 바래본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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