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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임정 대통령의 단군왕검 어천절 참석과 찬송에 대하여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에 뽑혔지만 이승만은 미국에서만 거주하고 있어, 상해 임정에서는 상해로 들어오기를 촉구하는 서한을 여러 차례 보냈다.  드디어 1920년 12월에 이승만은 처음으로 미국에서 배를 타고 임병직, 이원순 등을 대동하여 상해로 건너왔다. 그리고 6개월뒤인 1921년 5월 워싱턴 군축회의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 이승만 상해 임시정부 도착 환영식(1920. 12. 28). 좌로부터 손정도,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이승만, 안창호, 박은식, 신규식. (사진=독립기념관)

이 6개월도 채 안되는 상해 체류 기간에 이승만 대통령은 단군왕검 어천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천절은 음력 3월 15일이다.  이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은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다. 

是歲三月十五日 帝崩于蓬亭 葬于郊外十里之地 萬姓如喪考 奉檀旂 晨夕合坐敬拜 常念不忘于懷 (단군세기) 이해(BCD2241) 3월 15일에 단군왕검께서 봉정蓬亭에서 붕어하니 교외郊外 십리되는 곳에 장사지냈다. 모든 백성들이 마치 부모를 잃은듯  슬퍼하여 단기(檀旂)를 받들어 아침저녁으로 모여앉아 경배하며 항상 단군왕검의 덕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았다. - 단군세기 -

 1921년 양력 4월 22일이 음력 3월 15일 어천절이었다.  이승만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은 단군 어천절 기념식 석상에 참석했다. 개신교 신자였던 이승만은 단군왕검 어천절 찬송사(讚頌詞)를 낭독하여 단군 황조의 뜻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은 단군을 사상의 중심으로 뭉쳤다.  당시 이승만,안창호와 같은 개신교인 독립운동가들에게 단군은 결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민족의 뿌리로서 공경의 대상이었다.  

기독교 신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직접 작사한  "대황조의 높은 덕"을 보면 "우리황조 단군께서 / 태백산에 강림하사 / 나라 집을 건설하여 / 자손 우리에게 전하셨네 / 거룩하다 의의탕탕 / 대황조의 성덕 거룩하다" 라며 단군을 칭송하고 있다. 국조를 공경하며 하나님을 신앙한 것이다. 이승만,안창호 선생 및 개인교인 독립운동가들이 국조 단군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태도는 지금의 종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찬송사는 독립신문 1921년 4월 30일 자에 실렸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옛 한글을 조금 현대 한글로 수정함)

지난 음 3월 15일 어천절 기념식 석상에서 낭독한 이 대통령의 찬송사(讚頌詞)가 左와 如하더라.

온 셰상이 캄캄할 때에 (단군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어 빛과 터와 글을 주시니 알음과 직힘과 행함이 넉넉하엿도다

그 힘을 보이시고 도로 가시샤 녯 자최를 머무시니 졍신과 살음과 즐김이 영광과 평안과 행북을 엇어 문채롭게 건젼하게 널리 사랑하며 꿋꿋하게 이어 왔도다 우리 황조는 거룩하시고 크시며 지혜로 오시며 힘지시샤 이를 좃차 베푸시니 인류의 한배이시며 임검이시며 스승이샷다

허물며 그 핏줄을 이으며 그 가르침을 받아온 우리 배달 민죡이리오 오날을 맛나 깃겁고 고마운 즁에 두렵고 죄 많음을 더욱 느끼도다. 나아가라신 본 뜻이며 고로어라신 깊은 사랑을 어찌잊을 손가 불초한 승만은 이를 본받아 큰 짐을 메이고 연약하나마 모으며 나아가 한배의 끼치심을 빛내고 질기과져 하나이다.

 

1952년 제2대 이승만대통령 재선포스터. (소장자: 최현호 단군자료수집가) 출처 : 국학뉴스

1959년 제2대 이승만 대통령 재선 포스터에 보면 ‘단군의 피를 받은 배달민족은 이순신과 을지공의 용진법대로’라는 구호를 쓰고 있고 이승만 대통령의 머리 위에 단군왕검 어진을 그려넣고 있다. 해방이후에도 이승만의 단군에 대한 인식은 어느정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걸 떠나서 21세기를 끌어나가는 대통령들은 단군왕검과 국조를 대하는 태도, 이 부분만큼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단군왕검의 탄강일이나 어천절은 둘째치고 10월 3일 개천절 기념식에 조차 임기내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는 대통령이 어떻게 미래를 선도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이 모든 나라를 선도해서 나아가려면 우리 먼저 역사정체성이 바르게 서야 한다. 그 역사정체성의 중심에 환인,환웅,단군 우리들의 국조가 있는 것이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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