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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사기] 사마천은 숨기려 했지만... 주나라도 동이족 국가 

© claybanks, 출처 Unsplash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은 은나라를 연구하는 전 세계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사마천은 은나라 시조 설의 어머니 간적이 현조가 떨어뜨린 알을 삼키고 설을 낳았다는 난생사화로 은본기를 시작하고 있는데요. 그 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출처; 《신주사기》3 <은본기·주본기>

사마천은 은殷(상商)나라 시조를 설契이라고 설정했습니다. 설契은 자성子姓인데 제곡帝嚳과 간적簡狄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또 다른 이름은 설卨입니다. 그러나 《죽서기년竹書紀年》은 “제순帝舜이 29년에 임금이 명을 내려 아들 의균義均을 상商에 봉했는데, 이 이가 상균商均이다.”라고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은나라 시조 상균은 순 임금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죽서기년》은 춘추시대 진晉나라 사관 및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관이 편찬한 역사서로 서진西晉 함녕咸寧 5년(279)에 급군汲郡(지금의 하남성 급)의 위나라 양왕襄王(안리왕安釐王)의 묘에서 발견되어 《급총기년汲冢 纪年》, 《고문기년古文纪年》으로도 불립니다.​

그런데 남송의 나필羅泌(1131~1189)이 편찬한 《노사路史》는 “제순의 비 여앵女罃이 의균과 계리季釐를 낳아서 의균을 상商에 봉했으니 이이가 상인데, 그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곡의 아들인 설이 상나라를 건국했다는 기록과 순의 아들 의균이 상나라를 건국했다는 기록이 병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곡은 동이족이 명백한 소호의 손자이고, 순 또한 맹자가 동이족이라고 분명히 했으니 어느 경우에도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국가가 됩니다. 《금문신고》는 또한 설의 아버지는 곤鯀이고 할아버지가 전욱顓頊이라고 달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은나라의 실제 시조가 누구인가는 더 깊이 연구해야 할 과제지만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간적이 현조가 떨어뜨린 알을 먹고 설을 낳았다는 사화는 고구려 시조 주몽이나 신라 시조 혁거세처럼 동이 족 난생卵生사화라는 점도 이를 말해줍니다.​

중국인들은 하남성 안양시에서 은허(殷墟)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지 하·은(夏殷)을 실존했던 국가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은허가 발굴된 이후부터 은나라를 국가로 여겼는데, 이는 중국 국가사의 시작이 동이족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현재 중국에서 하나라를 실존 국가로 만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역사공정을 계속하는 이유는 은나라를 중국사의 시작으로 설정해서는 하화족의 중국사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래는 주본기 첫 대목입니다.

출처; 《신주사기》3 <은본기·주본기>

주나라 시조 기棄(후직)의 아버지는 제곡 고신씨입니다. 은나라 시조 설契의 아버지도 제곡 고신씨입니다. 기의 어머니는 제곡帝嚳의 원비元妃(첫째 왕비) 강원이고, 설의 어머니는 제곡의 차비次妃(둘째 왕비) 간적입니다. 따라서 기와 설은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가 다른 이복異腹형제입니다.​

제곡은 동이족 소호의 손자입니다. 따라서 은나라 시조 설과 주나라 시조 설은 모두 동이족입니다. 제요帝堯는 제곡이 진봉씨의 딸에게서 낳은 아들이니 또한 동이족입니다. 황제와 누조의 첫째아들은 소호고 둘째 아들은 창의입니다. 첫째아들 소호가 동이족인데, 동복同腹 형제인 창의가 동이족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또 두 아들이 모두 동이족인데, 그 아버지 황제가 동이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황제의 아들 창의의 후손인 제순帝舜과 하우夏禹도 모두 동이족인 것입니다.​

사마천은 주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 스스로 주 시조 후직의 어머니 강원이 제곡의 첫 번째 비라는 사실을 서술함으로써 주나라 또한 동이족의 국가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내용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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