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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선양은 거짓. 단군왕검의 명령에 의한 교체였다단군조선의 힘으로 순이 요에게서 나라를 넘받다

‘요순의 선양(禪讓)

중국 역사상 권력 승계와 관련하여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 ‘요순의 선양(禪讓)’이다. 

선양[ 禪讓]은 유교의 이상적인 정권 교체 방식으로, 천자(天子)가 제위(帝位)를 유덕자(有德者)에게 양도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요(堯)•순(舜)•우(禹) 사이에 행해진 정권의 이양을 말하는 것으로, 유교 정치의 모범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요 임금이 아들인 단주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민간에서 순을 후계자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요 임금은 수십년 동안 순에게 후계자 교육을 시키면서 그의 자질을  살핀 끝에 그에게 자리를 넘겼다고 전해진다.

요순선양은 허구다

 요堯가 이성異姓인 순舜에게 천자의 자리를 전해주었다는 이른바 요순선양설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이 자신들의 정치이상을 주장하기 위하여 당시 널리 전파되어 있던  요순 간의 정권 이양에 관한 전설을 미화시킨 것인데, 이 과정에서 일부 사실史實이 왜곡되었다.  즉 제위가 순에게로 전해진 것은 사실이나 요의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한 결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순의 세력이 커져 힘으로써 제위를 차지한 것이다.  <인류원한의 뿌리 단주,이재석 저> 중 

일부 학자들은 "선양이라는 것은 후대의 유가들이 신성화하고 미화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한다. 실제로는 순이 요로부터 대권을 찬탈했다는 것이다.

▶ 순자(荀子)는 「순자(荀子)」 <정론(正論)>편에서 “무릇 왈 요순선양은 허언(虛言)이라, 이는 소견이 천박한 자가 전한 것으로, 견문이 좁고 적은 자의 설이다(夫曰堯舜禪讓, 是虛言也, 是淺者之傳, 陋者之說也)” 

▶전국시대 말기의 한비자는 이 “선양” 사건을 승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대로 순(舜)과 우(禹)가 제위를 계승한 이유를 “신하가 임금을 시해한(臣弑君)” 결과라고 설명한다. “순이 요를 협박하고, 우가 순을 협박하고, 탕(湯)이 걸(桀)을 협박하고, 무왕이 주(紂)를 정벌한 이 4인의 왕자(王者)는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한 것이다.(「한비자(韓非子)」<설의(說疑)>) 

▶ 고대 사서인 『죽서기년(竹書紀年)』은 ‘순(舜)이 요(堯)를 가두고 아들 단주(丹朱)도 못 만나게 했다’고 찬탈(簒奪)이라고 전한다. 

▶<<괄지서(括地書)>>는 <<죽서기년(竹書紀年)>>을 인용, "석요덕표, 위순소회야(昔堯德表, 爲舜所回也)", "순국요(舜國堯)...사불여부상견(使不與父相見)"이라고 적었는데, 이는 요가 먼저 순에게 연금을 당하고, 나중에 아들,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며, 이로써 핍박하여 그를 양위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당(唐) 대의 유지기(劉知幾)는  「사통(史通)」 가운데 <급총쇄어(汲冢瑣語)>를 인용해 ”순이 요를 평양으로 내쫓았다(舜放堯于平陽)“고 설명하고, 또 순은 우에게 창오(蒼梧)까지 쫓겨가 죽었다고 설명한다

▶사기정의(史記正義)」의 사마정(司馬貞)은 「죽서기년(竹書紀年)」을 인용  ”요의 덕이 쇠해지자, 순이 가둔 바 되었다.(堯德衰 爲舜所囚) 순이 요를 가두고, 다시 단주(丹朱)를 쓰러뜨려 근절하여 부자로 하여금 서로 보지 못하게 했다.(舜囚堯 復偃塞丹朱 使父子不得相見也)“라 하였다.

순임금은 동이족

이덕일 소장에 의하면 '맹자주소(孟子注疏)'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는 "맹자가 말하기를 은나라 순임금은 제풍(諸馮)에서 태어나서 부하(負夏)로 이주해 명조(鳴條)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동이지인(東夷之人)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중국에서 성인(聖人)으로 떠받들고 있던 순임금이 동이족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최근 산동성(山東省) 남부 임기(臨沂:린이)시에 거대한 동이문화박물관을 열었는데 여기에 4명의 동이족 군주를 전시해놨는데, 태호 복희씨, 소호 김천씨, 치우, 순임금이 그들이다. 순임금을 동이족으로 전시까지 해놓았다.

요임금이 동이족 우순에게 양위한 배경

치우천황께서 서쪽으로 탁예를 정벌하고 남쪽으로 회대(회수와 태산)을 평정하여 산을 헤치고 길을 내시니 그 영토가 만리였다. 단군왕검때 당요와 같은 때인데 요의 덕이 갈수록 쇠하여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천왕께서 우순(우나라 순임금)에게 명령하여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보내 주둔시키셨다. 우순과 함께 당요를 정벌할 것을 언약하시니 요임금이 힘에 굴복하고 순에게 의탁하여 목숨을 보존하고자 나라를 넘겨주었다. 이때 순 부자와 형제가 다시 돌아가 한집안을 이루니 대저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함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여기서 우순에게 명을 내린 천왕은 누구인가 바로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왕검이다. 요순은 결국 선양이 아니라 요임금이 덕이 쇠하여 단군왕검의 명령으로 순에게 굴복한 것이다. 

요순선양이 거짓이듯이 태평성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요순시대' 전체도 다시한번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 진실은 결국에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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